카페·공간대관사업·독서교실·만남의 장소
휴게부터 지방소멸 살리는 매개체 역할도

서울교당
서울교당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역할이 융합된 복합적 문화시설이 핫플로 떠오르는 가운데, 종교에도 다양해진 공간 ‘카멜레존(Zone)’이 등장하고 있다. 

카멜레존은 한 가지 업무만 수행되던 곳이 다양한 기능성을 가지고 혜택을 제공하는 곳을 칭하는 말이다. 위장술로 목숨을 부지하는 카멜레온처럼, 물가가 오르고 일명 자릿세가 더 비싸지며, 기존 공간들이 고유의 기능만을 고수할 수 없어 결국 ‘공간’도 여러 가지 ‘위장술’을 거치고 있다.

이는 사찰이나 성당,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저마다 본래 목적인 법회나 미사, 예배 외에 여러 기능이 융합된 공간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이룬 것이다. 흔히 카페에서부터 도서관, 어린이집, 공방, 공연장까지 그 모습은 다양하다. 미와십자가교회는 예배가 없는 평일에 연극공연장 스페이스아이로 변신하고, 광주 무각사에 있는 로터스아트스페이스는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홀로 변신해 눈길을 끈다.

이에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주창한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대로 교당들도 교도들의 니즈(Needs)에 맞는 공간으로서 개벽을 이루고 있다. 먼저, 요즘 가장 독보적인 ‘원불교 핫플’로 떠오르는 원남교당은 카멜레존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막힘 없는 개방성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된 원남교당은 청년스테이나 워케이션(Work+vacation, 일과 휴가를 동시에 함) 등으로 숙소 역할은 물론, 플랫폼 기업 블림프와 함께 요가나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도 역할한다. 원불교 청년들의 응집력은 물론, 비교도 방문객들의 발길까지 붙잡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원남교당
원남교당

교당에 모여 ‘함께’ 함으로써 지방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곳도 있다. 바로 영광교당이다. 영광교당은 ‘책소리모임’을 비롯한 지역 소모임의 둥지가 되고 있다. 

책소리모임은 책만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뮤지컬 관람이나 안시내·김미승 작가처럼 유명한 작가를 초대해 북콘서트를 열거나, 독립영화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 시간 등을 통해 교당에서의 활동이 영광군 전체에 활성화 될 수 있는 매개체로 성장했다. 책소리모임을 만든 최인경 교도(영광교당)는 교당이 ‘공간적 집결지’로 주는 안정감과 든든함을 설명하며 “지방 소멸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우리 지역은 우리가 살리자’는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공부와 문화를 공유하는 ‘교당’의 존재적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면서 지역에도 그 영향력을 알린 셈이다.

지역민들에게 문화사랑방으로 교당문을 활짝 연 곳은 또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화역 앞에 위치한 일산교당은 ‘원WON 문화교실’을 열어 합창과 성악, 캘리그라피 등 인기있는 수업을 만들어 교당을 ‘교실’로 꾸렸다. 이 ‘교실’은 ‘누구나 찾아오기 좋은 곳’에 위치한 교당의 지리적 특성과 더해져 찾아오는 지역민들로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다.

바쁘고 각박한 사회에서 지역민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것도 교당의 역할이다. 과거 강진교당과 현재 추부교당은 교당을 찾는 이들과 다도수업을 통해 따뜻한 ‘마음한잔’을 건네는 곳으로 유명하다. 원불교의 마음공부를 ‘맛보게’ 하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한강교당
한강교당

좁고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로 인해 카멜레존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서울에 위치한 한강교당은 쓰지 않는 교당 공간을 ‘만남의 장소’로 변신시켰다. 이 공간은 한강교당 봉불 당시 실내 화단(대나무 숲)으로 조경됐다가 실내에서 식물이 생존하지 못하며 폐허가 됐었다. 이에 한도운 교무(한강교당)는 “교도들, 특히 남자교도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말로 이곳의 변신 계기를 전했다. 해당 공간은 1개월 여간의 공사를 거쳤고, 이제는 교당을 찾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주목할 점은 공사 결정부터 완공 후 작명까지 모두 재가출가 교도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해당 공간은 교당 교도들만 사용하는 법도량을 넘어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을 찾는 모두에게 개방된 장소다.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유연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카멜레존의 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른다. 한정된 공간의 쓰임에서 벗어나 활짝 열린 ‘개벽되는 교당’이 기대되는 이유다.
 

[2024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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