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아름다운 문화 중 하나를 꼽는다면 대중이 모여 교단사 혹은 공공의 일을 논하는 공사(公事)제도라 할 것이다. 교당이나 기관에서 하루 중 일정한 때를 잡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함께 모여 의견을 묻고 결정된 일에 마음을 합하는 공사제도는 작은 원불교가 세계일을 해나가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는 특히 의견교환을 통한 공사제도가 활발했기에 역동성이 넘쳤다. 가령 특정 사안에 대해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일일이 묻고 경청함으로써 지혜단련과 아울러 주인정신을 고취하는 기폭제가 됐다. 또 대중들의 활발한 의견개진은 초기교단의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도 꽤 유용했다. 그러기에 이의 장려를 위해 좋은 제안에는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공사제도에 적극성을 유도했다. 이는 대중이 곧 주인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최근, 전산종법사는 여러 자리에서 ‘공의로 움직이는 교단’을 강조했다. 교단 4대는 대중의 힘으로 가야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전산종법사는 ‘교단 1대는 소태산 대종사의 기운으로 왔고, 교단 2대는 정산종사의 기운으로 왔으며, 교단 3대는 내(대산종사) 기운으로 간다. 교단 4대부터는 대중의 기운으로 간다’고 한 대산종사의 말을 인용했다. 전산종법사는 취임 초기에도 ‘대중의 뜻이 우선’이라는 말을 강조했고, 이에 앞서 경산상사 역시 종법사 초기 ‘종명(宗命) 보다 공명(公命)’을 강조한 바 있다.

강소종교를 자처하는 원불교가 교세의 미력에도 불고하고 한국 사회에서 기성종교들과 힘을 합칠 수 있었던 요인은 대중의 합력과 총화에 있었다. 논의 과정에서는 각자의 생각들이 자유로이 개진되고 이에 대한 치열한 토의가 이뤄지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물같이 하나로 합하는 힘은 원불교의 자랑이었다. 그러기에 일단 합의되고 결의된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를 떠나 일당백의 정신으로 기운을 합했기에 ‘적은 숫자로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중의 힘이 하나로 뭉친 결과는 기적을 이뤄왔다.

하지만 근래에, 교단도 우리 사회의 급변과 함께 많은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제각각의 구성원들이 제각각의 고집을 놓지 못함으로써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지고, 지지부진한 교화사업이 구성원들의 열정을 감소시킴으로써 불만으로 쌓이기도 했다. 이를 염려한 듯, 상산 박장식 종사는 최후법문에서 ‘둘이면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우리, 대중은, 이제 ‘내 생각을 놓고 대의에 물같이 합해야 할 때다. 그리고 공의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불같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 교단 4대는 그런 단결과 총화가 희망의 밑거름이다.

[2024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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