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살 데가 없는데 결혼은 왜 하고, 아이는 어떻게 낳나요?”

대한민국이 당면한 저출생·인구소멸 문제의 원인으로 흔히 ‘집’을 꼽는다.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를 낳으려고 해도 집이 걱정인 세상. 인구의 절반이 서울 및 수도권으로 향하는 지방 소멸과 편중의 시대, 주거 문제야말로 이를 해결할 포인트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대한민국 주거 문제. 특히 젊을수록, 서민일수록 더 냉혹한 게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서 살며, 앞으로 어디에 두 다리를 펼 수 있을까. 집 문제 앞에서 더없이 가난해지는 마음을 숫자로 들여다보자. 
 

식당·농장·공장의 일부에 사는 사람들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가구 44만명.’ 지난해 10월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주택 이외 거처 주거실태조사’ 보고서로, 우리 사회는 이 거대한 숫자를 마주했다. 

‘집이 아닌 곳’은 고시원과 숙박업소 객실, 일터,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취약 거처’를 의미한다. 이곳에 무려 44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44만명이면 익산시 인구 27만명(2023년 12월 기준)에 정읍시와 완주군까지 더한 인구수와 비슷하고, 서울 내에서는 7~8위인 강동구나 양천구 인구와 비슷하다. 이 많은 사람이 이른바 ‘집이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 같은 취약 거처 거주는 최근 5년간 20% 가까이 급증했다. 수도권에서만 고시원이나 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 수가 13만7256가구에 이르며, 이는 전체 취약 거처의 60%를 차지한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 곳에서 제공해주는 밥과 국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고시원·고시텔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다. 특히 수도권에서 두드러진 이 현상은, 잇단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으로 밀려난 노후주택 저소득 가구가 마땅한 주택을 찾지 못해 밀려난 결과로 분석된다. 

취약 거처 중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일터의 일부다. 식당이나 농장, 공장의 일부 공간에 사는 가구가 전체의 38.2%이고, 고시원·고시텔(35.7%)이 뒤를 잇는다. 숙박업소 객실(13.1%)에 이어 마을회관, 컨테이너, 고속도로 휴게소 등 더 열악한 기타 거처도 10.6%나 된다.

‘집이 아닌 곳’에는 누가 살까. 가구주의 평균연령은 52.5살, 가구원 수는 1.4명이었다. 대부분의 가구(89.9%)가 일을 하지만, 전체 가구의 66.3%는 저소득층, 그것도 소득 하위 1~2분위에 해당한다. 이들의 특징은 낮은 임금의 일자리와 높은 연령, 높은 1인 가구 비율로 정리된다. 
 

고시원, 숙박업소 객실, 일터, 비닐하우스 등에 거주
내집 마련의 좌절감과 기회에 대한 불안이 영끌 불러
전세제도·빌라 ‘주거사다리’ 끊기며 불안·포기 늘어나

좌절감과 불안의 결과, 영끌투자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조건 ‘집’. 그렇다면 이 인권을 왜 누리지 못하는 걸까. 당연하게도 ‘비용’ 때문이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러니까 공기만 먹고 살면서 아무것도 타지도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15년을 모아야 겨우 집 ‘한 칸’을 산다. 청년 10명 중 8명이 세입자인데, 내집마련을 위한 저축은 커녕 보증금을 깔고 월세 내기에도 급급하다. 부모 세대에서는 가능했던 일이 내게는 불가능할 때의 좌절감, 이대로라면 또다시 폭등해 이마저도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는 젊은 세대가 ‘영끌대출(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하는 이유가 된다. 

어떻게든 집을 사는 이유는, 사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년가구 평균 보증금은 1800만원, 월세는 37만7000원이었다. 전세의 경우 평균 보증금은 1억6324만원이었다. 특히 서울의 청년들은 최소 69만원의 월세를 내며 회사에 다닌다. 
부동산 시장의 혹한은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지난해 서울의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다시 말해, 서울 18평 이하의 소형 아파트의 50.2%가 월세라는 것이다. 

서울의 소형 아파트들은 청년 혹은 신혼부부들이 주로 계약하는 규모인데, 여기서 ‘월세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은 이들의 소득 대비 고정지출이 늘어나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소형 아파트가 떠오른 이면에는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이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주 피해자였던 사건으로, 아파트의 대안이던 빌라에 대한 불신을 높였다. 이에 젊은 세대들이 빌라보다 아파트를 찾으면서 소형 아파트들이 품귀현상을 빚었다. 결국, 가뜩이나 살 곳이 없던 젊은 세대들은 더 비좁고 비싼 곳으로 밀려났다.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착실히 돈을 모아 자산을 일궈가며 번듯한 내 집을 갖는 것. 수십 년 동안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시대에는 전세제도와 빌라, 즉 ‘주거 사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목돈을 모으는 데 결정적이었던 전세제도와 적은 예산으로도 고를 수 있었던 빌라라는 두 가지 주거 사다리가 끊기면서, 열심히 일해봐야 그저 집주인 주머니만 불려주는 허무한 삶이 반복되고 있다.

주거안정을 위해 직주근접을 포기
이런 상황이니 기존 관념을 깨는 이사가 빈번하다. ‘월세나 전세 대출 이자를 내느니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내자’라거나 ‘눈을 질끈 감고 무리하게 내 집을 마련하고, 대신 직주근접 즉 짧은 출퇴근 시간을 과감히 포기’한다. 지난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0억 5090만원, 경기 아파트는 3억1637만원, 인천은 3억6609만원이었다. 최근 뚜렷한 인구 이동 흐름으로 나타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없는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대한민국 주거. 왕복 세 시간의 출퇴근과 이자 폭탄을 감수하면서까지 영끌하는 건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환경에서 온다. 당장 팍팍한 주거 현실 속에서 사는 이들을 위로하며, 현실적 대안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은 ‘지방엔 모이가 없고, 서울엔 둥지가 없는’ 시대다.

[2024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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