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도 교도
방원도 교도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사진이 ‘순간’의 미학이라면 그림은 ‘회상’의 미학이다.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수없이 곱씹고 추억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추억하는 어떤 날의 날씨, 그곳에 서있던 나무, 자잘한 들꽃 하나까지 옮겨내는 붓에는 간혹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가 그려낸 원불교 ‘익산성지’에는 시아버지와의 한 때가 담긴다. 그림은 방원도 교도(어양교당)가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일상 수행의 요법을 실천하는 수련과목이다. “그림은 나무보다 나무 사이의 하늘을 보는 과목이에요.” 하늘에 떠있는 해와 구름이 만들어내는 빛이 그림 속 나무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란다. 

빛이 있어야 그림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햇빛의 결 하나하나에도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이 원불교 공부와 참 닮았다. 인과를 담은 원불교 이치를, 그는 그림을 통해 배우고 익힌다. 

아름다운 나의 성지
“익산성지에는 구석구석 아름다운 부분이 너무 많아요.” 
인터뷰 첫 마디를 그는 그렇게 뗐다. 진심이 꾹꾹 눌러담긴 말에는 성지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성지는 평소에도 갈 때마다 늘 좋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화백의 눈을 장착하고 보니 소홀히 넘길 곳이 하나도 없었다. 구석구석 눈 닿는 곳마다 마치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닦고 또 닦아 반짝이는 마룻바닥처럼 정교하고 반들반들했다. 그제야 많은 선진들이 얼마나 이곳을 귀히 여기며 살았는지 절감했다. 그리고 그 어른들 중에 자신의 시아버지, 故 김윤중 선진(교무)도 있었다. 

“하얀 한복을 입고 원로원에서 나오실 때면 꼭 신선이 내려오는 듯 했어요.” 유화는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공기와 산화되며 은은한 광택이 나고 더욱 빛이 난다. 오랫동안 전무출신으로서 올곧게 살아온 시아버지도 꼭 그 유화처럼 은은한 빛이 났다. “아버님은 저와 함께 성지 곳곳을 돌며 그곳에서 선진님들이 어떤 일을 하셨고, 또 어떻게 원불교가 꾸려졌는지 알려주셨어요.” 그의 그림에 이해와 존경이 담긴 이유다.
 

‘감사 생활’로 붓 삼고 ‘일상 수행의 요법’을 물감 삼은 화가
전무출신인 시아버지와 아들, 시어머니께 배우며 깨달은 원불교 
화가로서, 스승으로서 경계 만날 때마다 감사 생활 깨닫고 전해

진심으로 깨닫는 삶
성지를 그림으로 그릴 때 따뜻함을 담고자 빛에 유독 신경을 썼다는 그. “원불교는 내내 저에게 따뜻한 곳이었거든요.” 그에게 원불교는 이렇게 기억된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가면 꼭 사탕을 주던 교무님, 또래 아이들과 왁자지껄 달리기를 하기도 했으며 어쩌다 달리기에서 1등하는 날에는 연필이나 지우개를 받고 마음껏 기뻐했던 곳. 그렇게 따뜻한 교당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런 따뜻한 기억들은 익산성지에 갈 때마다 나이테처럼 새겨져 또렷하게 기억난다. 

결혼하면서 원불교는 그에게 완전히 ‘집’이 됐다. 시아버지만큼이나 정토로서 모범이었던 시어머니는 달이 바뀔 때마다 달력에 ‘며느리에게 공들이자’고 쓰던 분이었다. 비뚤빼뚤해도 진심이 담긴 글씨로. 그뿐인가, 시댁에는 늘 원불교 기운이 가득했다. 그 기운 아래서 성장한 그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꿈을 묻는 질문에 늘 ‘교무님’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들의 그 꿈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50대가 돼야 어느 정도 깨닫는 삶의 이치를 원불교 교무님이 되면 더 빨리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들이 어느 날 “엄마는 내가 어떤 교무님이 되면 좋을 것 같아?” 하고 물었다. 그는 고민없이 “진심으로 깨닫는 교무님”이라고 답했다. 아들 김성원 교무(중구교당)는 엄마와 함께 세운 서원길을 곧게 걸어가는 중이다. “시부모님을 통해 배운 가르침을 아들을 통해 비로소 깨닫는 것 같아요.”

화백으로서, 스승으로서
‘그림은 욕심 가득한 마음이 있으면 절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방 교도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창조의 작업을 하는 화가는 경계를 자주 만난다. 방 교도는 그럴 때마다 법문을 찾는다. 그리고 며칠 붓을 놓고 마음을 살핀다. “교무님의 설법을 듣거나 <원불교 교전>을 읽으면 마음이 돌려져요.” 궁극적으로 보면 결국 모든 답은 마음 수련에 있다고 그가 말한다. 

화백이자 스승인 그는 제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경계를 접할 때가 있고, 경계를 만난 학생들을 마주할 때도 있다. 한 학생은 손 마디가 없었다. 허나 방 교도의 눈에 그 학생은 누구보다 화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방 교도는 그 진심을 읽을 줄 아는 스승이었다. 학생은 그릴 때 말고는 부끄러운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때마다 그는 말했다. “멋있어, 넌 정말 성공할거야.” 진흙 속 진주처럼 의심의 경계 속에 있는 재능을 그는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시아버지, 교무님 등 인생에서 많은 스승이 그에게 해줬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 인생을 흰 도화지에 비유한다. 그리고 흰도화지를 채워내기 위해서는 한 겹, 한 겹, 기초가 중요하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소태산 대종사가 말한 ‘일상 수행’이 바로 그 한 겹 한 겹을 쌓는 기초라 여긴다. ‘요란하지 않은 심지’를 붓 삼아 쥘 때마다 그에게는 이것이 곧 하나의 ‘입정(入定)’이 된다.

[2024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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