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주 교도
소문주 교도

[원불교신문=소문주 교도] 지난해 봄 초저녁 시간, 번개탄을 샀다는 문자를 받았다. 내담자의 비상 연락망이 없어 먼저 신고를 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계속 문자를 하는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은 하얘지는 상황, 그리고 울부짖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왜 경찰을 보냈냐, 나는 이 사람들이 우리집 앞에 와 있는 걸,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다. 선생님 때문에 이게 뭐냐….”

그리고 “선생님은 매뉴얼대로만 움직였잖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집에 들어간 경찰은 내게 와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의 부모님을 연락해달라, 모셔와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수없이 입으로 되뇌던 그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부모님을 모셔달라했으니… 나도 참….

“선생님은 매뉴얼대로만 움직였잖아요!”

이 말이 나를 화나게 했다. 하루에도 족히 백번 이상은 불쑥불쑥 올라왔다. 원망도 생겨났다. 공감이고 연민이고 그를 향해 있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다 애도와 죽음에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마침 교정원 문화사회부에서 실시하는 생명지킴이 교육에 참여했다.

자살 예방프로그램, 생명지킴이 강사교육, 트라우마 집단상담, 어시스트 과정까지 수료하고 원불교 다시살림전문가 인증식을 마쳤다. 공부하는 동안 그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됐고 ‘죽음’에 관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여름 그는 긴소매 옷을 입고 수척해져서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아있는 모습으로 상담센터에 왔다. 이사한 센터에 직접 찾아오다니 너무 놀랐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울었다. 내가 살려고 밀쳐놨던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과 미움 등이 엉켜진 채로 그를 토닥였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조금은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다음 시간을 약속했다.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 그는 큰 약봉지와, 직장 근처 맛집에서 사 왔다는 간식을 들고 왔다. 검사결과 이야기와 직장내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나에게 “선생님, 제 전화번호 수신차단 풀어주세요”라고 요구했다.

나는 “지금처럼 센터 핸드폰을 사용하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나로서는 쉽지 않은 거절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그의 주호소 문제(내담자의 현재 문제)와 연결된 부분이기도 하고 내 문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그림책 〈자살 토끼〉를 읽었다. 자기 무덤에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영화 속 남자도 만나본다. 지난해 봄 그와의 촉박했던 몇 시간이 이제 내게는 성장의 시간으로 축적돼 다시 이 봄을 맞이한다. 

여름, 그가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 것처럼 올해 여름, 죽음교육전문가가 되어있을 나를 그려보며 오늘도 용기를 내어 또 나아가고 있다. 

/홍제교당ㆍ원불교다시살림전문가

[2024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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