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교도 / 이리교당
전정희 교도 / 이리교당

[원불교신문=전정희 교도] 3월 8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에서 유래돼 1977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남녀고용평등법, 모성보호법, 남녀차별금지 및구제에 관한 법률, 호주제 폐지 등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이런 법·제도의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왔던 여성운동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강한 반발 이른바 ‘백래시(Backlash)’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 때의 젠더 논쟁을 기화로 여성혐오와 반페미니즘에 대한 정서가 은연중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3월 6일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성별 임금 격차 역시 31.1%로 27년째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 여성이 다른 선진국 여성들보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노동시장에서의 소외를 겪고 있고,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원불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너무나 당연시되던 그 시대에 남녀의 권리가 동일하다는 것을 천명했다. 처음에는 ‘부부권리동일’이었다가 지금은 사요(四要) 속에 ‘자력양성’으로 남아 있지만 남녀평등의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초기 교서인 <육대요령>의 ‘남녀권리동일’ 강령에는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을 남녀가 같이 하자’는 것, 그리고 ‘남녀가 서로 상대로 인하여 자기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원망심이 없도록 하자’고 함으로써 남녀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격체여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불교는 양성평등에 대한 
대사회적 메시지와 실천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할 
교의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남녀권리동일’ 조목에는 ‘결혼 후 물질적 생활을 각자 자립적으로 할 것’,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면 그 지도를 받을 것’,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것’, ‘남녀가 다 같이 직업에 근실하여 생활에 자유를 얻을 것’, ‘남자에게 독특한 사랑과 의뢰를 구하지 말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직업을 통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자유, 차별 금지, 정신적 독립,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등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더욱이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면 그 지도를 받으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받들고 남존여비사상이 뿌리 깊었던 시대에 여성들을 교육·훈련시켜 전무출신을 배출해내고 남성 교역자와 동등하게 교화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교단의 최고 결의기관인 수위단도 남녀 동수로 정했다.

그런 교법 아래에서 여성 교무들은 국한 없이 교화의 일선에 나설 수 있었고, 남성 교무와 동등하게 교단의 주역으로서 새 회상 건설에 앞장섰다. 그 결과, 국내는 물론 해외 교화에 이르기까지 여성 교역자의 헌신과 희생을 말하지 않고 원불교의 역사를 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원불교는 양성평등에 대한 대사회적 메시지와 실천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할 교의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의 ‘백래시’처럼 교단의 각 기관과 교당, 교도들의 의식 속에서 초기 교법의 ‘남녀권리동일’이 후퇴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하다. 혹여 우리 안에 유리천장은 없는지, 의식의 저변에 남아 있는 성차별적 요소들을 아직 걷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여성혐오와 반페미니즘의 풍조에 저항 없이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이리교당

[2024년 3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