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의료원 사무처장 金聖現 교무

삼동윤리 정신으로 하나의 세계 이뤄지길
원광의료원 모든 환자 쾌유 기원
막내딸 전무출신 서원세우기 소망
『새해엔 삼동윤리 정신이 퍼져서 하나의 세계가 이뤄지고 남북통일이 돼서 7천만 민족이 합해지면 좋겠지요. 그리고 우리 원광의료원에 있는 모든 환자들이 쾌유되길 기원합니다』
 올해로 원광의료원에 근무한지 17년째 접어드는 사무처장 厚山 金聖現 교무. 그는 그것 말고도 꼭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이 또 하나 있다. 현재 중문학 박사과정을 밟고있는 막내딸 도영이 전무출신 서원을 세워 인생에 있어 보람된 일을 하게 됐으면 하는 것이다.
 金 교무는 60년의 삶을 돌아보며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길게 놓고 생각해 보아라. 현실만 보지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게 인간으로서 가장 보람된 일인가를, 20년후 네 동기들과 모습을 비교해 보라』고 한다.
 일제치하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해방을 맞고 5년후 가장 처참했던 동족상잔의 6^25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대. 그 후로도 화폐개혁, 4^19, 5^16 등 사회변화의 큰 물결들을 겪으며 시대의 변화, 가치의 변화를 체험해야 했다.
 뿐만아니라 제2차 방언공사에 참여하며 교단생활을 시작해 서울회관 사건 수습과 인장사건시 실무를 맡아보았고, 원광사를 거쳐 병원근무 등 40년 전무출신의 삶 또한 큰 흐름의 고개를 넘겨온 그는 대과없이 살아온 삶에서 보람을 느끼고 세속적 욕심에 흐르지 않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삶의 배경에서 대종사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광 묘량 출신인 그는 악명높은 지존파로 유명해진 佛甲을 떠올린다.
 『그 지존파들이 살던 그 자리가 바로 6^25때 무수한 사람들이 끔찍하게 희생당했던 그 자리죠. 그 사건을 보면서 그때의 기운이 뭉쳐서 나온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대종사님께서 산에는 피난지가 없다고 하셨다는 조모님 말씀을 듣고 산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가운데 희생당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대종사를 친견한 조모(박천시옥)님의 신앙은 일원가정을 이뤄 가족을 돌보는 일뿐아니라 香山 安理正 종사를 비롯해 자녀, 친지 등 집안에서 한 단이 넘는 전무출신을 배출했고 金교무도 8남매의 장남으로 출가의 삶을 걸어왔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가정을 원만히 이끌어왔고 유난히 형제애가 좋은데다 자녀들도 잘 성장해 장남 道公교무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원광의료원 개원 당시 28개의 의료원이 허가를 받아 개원했으나 현재 원광의료원만이 남아있다』며 당시 허가를 내준 당무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아직도 갖고 있는 金교무. 『경리나 약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지만 인과의 이치를 생각하며 신용과 조화, 인화에 중점을 둬 운영에 참여해 왔다』는 그다.
 金교무는 직원들에게도 의료원과 환자들에 대한 마음씀씀이 인과에 바탕한 작용이길 역설한다. 전주^광주^익산 한방병원, 치과병원 등 차츰 산하 기관이 많아지고, 올 7, 8월쯤 개원 예정인 산본지역 병원 등 다양한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 모두의 몸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이 함께하는 건강한 삶을 통해 제생의세의 이념이 실현돼야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원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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