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중심으로 -金 成 薰 교무-

 이 글은 金成薰 교무가 지난달 31일 열린 제16회 원불교사상연구 총발표회에서 「민속 의례와 원불교 의례」란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 중에서 부분발췌한 것이다
교화발전 위해 민족 전통문화 존중하고
원불교적 특성 살린 명절의례 제정해야

 1. 머리말
 원불교운동은 교조 少太山에 의하여 1916년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에는 의례제도의 개혁과 4기념례를 중심으로 신정의례를 발표하였고, 1943년에 소태산의 열반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이한 역사적 맥락을 생각하면, 원불교 의례 문화의 발상적 토양은 일제 식민시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에도 교조 당시의 원형회복과 복구에만 관심을 집중하였을 뿐, 일제 시대에 비굴하게 타협했던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평가가 없었다. 심지어 교리용어나 원불교 의례 문화에 남아 있는 일제시대의 문화적 잔재까지도 거의 대부분 지금까지 비판없이 보전하여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민족 명절과 민속의례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의 고유 명절 중에서도 민속의 날인 설과 추석은 가장 대표적인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원불교 의례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문화적 변질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필자는 꽤 오래전부터 민족 명절에 행해지는 민속의례와 원불교 의례의 조화적 시도를 연마해 왔다.
 2. 설날에 대한 원불교 의례현상
 설날에 대한 원불교 의례현상은 양력 1월 1일을 新正節로 지정하고, 대각개교절ㆍ석존성탄절ㆍ법인절과 함께 네가지 큰 경절로 경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정절로 바꿔진 원불교 설 문화 현상에 대하여 그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시대의 문화 정책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원불교가 1916년부터 전남 영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니 시기적으로 일제 식민통치 시절로, 일제가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시키고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광란하던 때였다.
 그러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이중과세 방지라는 미명아래 민속 전통의 의례인 설 문화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민족의식의 얼이 계승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하여 소위 새로운 설이라는 뜻으로 양력 1월 1일 일본 설을 新正이라고 하여 관민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출현한 원불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정책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이중 과세 방지에 대한 대안이었다. 당시로서는 이중과세를 방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으로써 양력설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고, 그 이름을 신정이라 하였고, 원불교에서는 신정절을 교단의 사대경절의 하나로 경축하게 된 것이다.
 셋째는 서기년 중심의 서양 문화에 편승 수용하는 양력 문화의 영향이었다. 해방후 서양 문화와 종교세력의 지배로 민족문화와 미풍양속의 전통 및 가치관의 유린이 심각했다. 따라서 해방 이후 서양문화와 사상의 연원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서기년을 사용하게 되었고, 서양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년중 행사에 맞추어 12월 25일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와 양력 1월 1일을 연계하여 연말 연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양력 설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원불교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시대적 변화로 인식하고 양력 문화를 신속하게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불교 대각개교절이 원기 60년대까지 양력 3월 26일에 경축행사를 하였던 것은, 원래 1916년 병진 음력 3월 26일 이른 아침에 교조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한 것을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음력 3월 26일을 그냥 그대로 양력으로만 바꾸어 3월 26일을 대각개교절로 지정하여 오랫동안 경축 기념하여 왔던 사실로 입증할 수 있다.
 넷째는 전통 문화 및 역사 인식에 대한 무관심과 민속의례에 대한 오해이다. 원불교는 1926년 「新定儀禮」를 발표하여 당시 허례와 형식에 빠진 예법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종래 생활의식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상을 널리 선양하였다. 그러나 원불교 의례의 본질이 그 근본 정신은 더욱 드러내고 형식을 간소화 시키며, 절약을 통하여 공익사업을 하자는 것이며, 보은봉공의 정신으로 하자는 혁신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전통 문화 및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소홀한 감이 있다. 또 민속의례에 대해서는 번거롭고 미신적 경향으로 보려는 듯한 경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26년 4기념 예법을 발표하고 <&28505> 공동생일 기념은 회상의 생일과 교도들의 공동 생일을 한 날로 합동기념하자는 것이요, <&28506> 명절 기념은 재래의 수많은 명절들을 한 날로 교당에서 합동 기념하자는 것이요, <&28507> 공동 선조기념은 부모이상 선대의 모든 제사를 한 날로 공동 기념하자는 것이요, <&28508> 환세기념은 새해를 교당에서 공동 기념하자는 것으로, 경제적 절약과 공익사업 생활 이익을 위해 실행하라고 하였고, 4기념 예법 또한 모든 인식이 아직도 繁文縟禮와 미신 풍속에 깊이 쩔어 있는 때, 각 교당 신자들이 서로 앞장서서 이를 먼저 실행하라고 하였다. 공동생일로 합동 기념하게 되니 사실상 개인의 생일과 회갑 등의 잔치 풍습이 무시되는 결과가 되었고, 수많은 명절들을 교당에서 한날에 합동기념하니 민속 명절의 풍습이 없어져야 하고, 제사를 한 날로 공동 기념하니 가정 중심의 조상숭배 전통의례 풍습과 기능이 약화되고, 설날도 교당에서 공동 기념하게 되니 민속 전래의 미풍양속인 설날의 전통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또 인심이 번문욕례와 미신 풍속에 깊이 쩔어 있는 표현이 주는 느낌에서 민족 전래의 민속적 의례에 대해서는 번거롭고 미신스런 경향으로 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의 요소마저 느낄 수 있다. 1926년 당시의 상황에서는 개선해야할 혁신적 의미가 있었다 하더라도, 민족정기와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 활발한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새로운 연구와 검토가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설날은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여 민족 최대의 명절로 국가와 사회가 옛 풍습과 전통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원불교 신정절 행사로는 설날의 전통을 계승할 수 없고 전래 풍속인 조상숭배와 차례의 아름다운 옛 향내를 찾아보기 어렵다.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숭배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행위이다. 새해를 맞이한 첫 행동이 차례로 나타나며 무엇보다도 먼저 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한국인의 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3. 설날의 전통 분위기와 원불교 의례 정신의 조화적 시도
 필자는 민속의례의 전통적 분위기와 원불교 의례 정신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20여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연마하면서 실제로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반응도 참고하였다. 다행히 비교적 호응도가 좋아서 이제 함께 연구하고 뜻있는 사람들이 먼저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도는 첫째 명절의 분위기와 원불교의 종교적 분위기를 조화시켜보자는 것이며, 둘째 명절의 의미와 원불교의 종교적 의미를 조화시켜 보자는 것이며, 셋째 명절 문화의 전통과 형식을 종교적 의미와 깊이로 승화시켜보자는 것이며, 넷째 민속 명절과 의례에 대하여 무관심한 원불교 의례가 그 뿌리를 찾아 원형을 복구해 보았으면 하는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시도해 보았던 설날 차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차례의 시간은 종래와 같이 아침 식사전으로 하였다. 식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새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제일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조상숭배의 아름다운 전통을 보전하고 계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례의 장소는 사당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차례 지낼 수 있는 넓은 곳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돈된 거실이나 큰 방이 좋고 병풍이 있으면 병풍을 치고하면 분위기가 한결 좋았다. 일원상을 모신 앞이면 더욱 좋다. 차례상은 교자상 만큼 큰 것이 좋다. 상이 커야 청수, 촛대, 장엄물 등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장엄을 하되 전통 명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설 명절 특유의 장엄을 한다.
 음식 준비와 장엄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도이므로 설명과 이해가 필요하다. 종래에는 제수를 위한 음식 준비가 번거로왔으나 여기서는 가족들이 먹기위한 음식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떡과 과일 강정 냄새없는 다과류 등을 꽃과 함께 차례상의 장엄도구로 활용한다. 예전같으면 제사 음식을 교자상에 진설하였으나, 이번에는 명절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명절을 위해 특별히 만든 냄새없고 마른 다과류 등을 바구니나 접시에 예쁘게 담아 장엄용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언뜻보기에는 음식물 진설같지만 사실은 불전 장엄의 의미만을 갖되 명절 음식물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명절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생선이나 고기, 밥, 국물, 나물류 등에는 장엄용으로도 올려놓지 않는다. 여기서 특징은 제사상이 아니라 불전장엄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맨 안쪽에 청수기를 놓고 그 앞줄 양쪽에 촛대와 촛불을 밝히고 그 앞 공간에 꽃과 다과류 등으로 명절 장엄을 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음식물 진설이 아니라 진설 비슷하게 장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 앞에는 향로를 놓고 향을 피운다.
 설날 차례 순서는 1. 입정 2.심고 3.법신불전 분향 사배 4.부모조상전 분향 재배 4.세배 5. 일원상서원문 6. 성가 34장 순으로 한다. 입정은 5분 이내로 짧은 시간에 마음을 정화시키며, 심고는 각자의 1년 소망을 기원하도록 하고, 법신불전 분향 사배는 먼저 법신불께 세배 올린다는 뜻이며, 부모 조상전 분향재배는 부모 조상전에 세배 올린다는 뜻인데, 전통 차례에서는 술 세잔을 올렸으므로 술 대신에 향을 세 번 올리는 것도 무방하다. 먼저 할아버지 항렬, 그 다음 아버지 항렬, 그 다음 아들ㆍ딸 항렬 순으로 하면 과거 술 세잔 올리는 의미와 유사하다. 세배는 어른께 먼저하고 그 다음 어른에 순서있게 하고나서 독경을 일원상서원문만 한다. 성가 34장이 신정절 노래이긴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이므로 설날 노래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34장을 불러도 무방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57장 부모은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4. 맺음말
 한국 종교 의례는 긴 세월에 걸쳐 민족 문화와 세시풍속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원불교가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민족 명절과 민속의례인 세시풍속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그동안 다소 소홀하게 여겨왔던 원불교 의례 문화에 대한 뿌리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원불교 의례와 절차는 아직도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정 보완해야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최소한 일제 식민지 시대 때 발생한 의례 현상의 발상적 토양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불교가 대중 종교로서 한국에서부터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어야 그 힘으로 세계로 뻗어나는 원불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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