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和允 교무

 학생들과 영화보기로 한날!
 약속시간을 지나 도착한 한 학생의 앞머리가 빨간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평소 그 아이의 태도나 환경을 생각할 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로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이 법당에 들어설 때 머리모양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청소년교화 3년째 되던해, 중2 학생교우가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가출하여 행방을 모르던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어있는 사체를 살피며 그 애라는 흔적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으나 앞머리카락을 보고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짧은 머리를 세우느라 드라이기로 노랗게 그슬린 머리로 교당에 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야릇한 붉은 염색을 한 또 다른 학생이 내 앞에 나타나고 보니 보는 순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왜 그러니?」 그의 변화에 즉각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자 그애는 숨어버렸다.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변화를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학교에 허락된 흡연장소가 있다는 그 하나만도 내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들의 급작스런 변화에 부모도 나도 허겁지겁 당황하여 다그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또다른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지속성은 없는 것 같았다. 몇주만에 나타난 그 아이의 머리는 염색을 지운 말끔한 모습이었다. 법당에 방석도 깔고, 라면을 끓여 아이들에게 주기도 하고 설겆이도 맡아서 한다.
 아이들의 변화는 속임수일수도 있다. 그안에서 오히려 순수가 발견되기도 하고, 내눈에 그릇되어 보이는 변화가 그들에게는 그저 해보고 싶은 단순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미리 그릇 인도했다는 겁부터 내어 나무라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끊임없는 관심 속으로! 끊임없는 믿음 속으로! 정을 건네게 되면 그 아이들은 어느 순간 살며시 다가와 내곁에 앉아있음을 확신해 본다.
〈조화윤 / 법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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