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신앙의 확립

나는 백수동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님을 도와 집안 살림을 하였다. 나는 5남매 중 차남이었으나 누나 두 분(중타원 김대심, 건타원 김대관)이 모두 전무출신을 하였고 형(지산 김대현)은 이리시(현 익산시)에 있는 원광고등학교에 다니고 여동생(선타원 김정심)은 어렸기 때문에 어머님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원불교에서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원광중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불교에서는 3대가 전무출신을 한 가정에 1명을 장학생으로 가르쳐 주는 제도가 마련됐다. 그래서 그동안 뛰놀던 영산을 떠나 유학의 길-이리시에 온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는 3월에 아버님을 따라 이리시에 이르렀다. 이미 원광고등학교를 다니는 형의 자취방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버님을 따라 총부에 갔다. 처음 보는 총부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정문을 지나 조실로 가는 숲속의 길은 너무 엄숙하여 고개가 저절로 수그려졌다. 조실에 들어가니 정산종법사께서 정좌하고 맞으셨다. 큰절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버님은 종법사님 곁으로 가시더니 속삭이듯 조용조용히 말씀을 나누셨다.

영산에서 말로만 듣던 종법사님을 처음으로 뵙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세상의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동안이었다. 포근한 손등은 목하송이 처럼 부드러움을 느낄 것만 같다. 빙긋이 미소진 맑은 성안으로 아버님과 말씀을 나누시는 모습은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는 자애로운 사랑이 감도는 모자상과 같았다.

말로만 듣던 성자의 모습? 바로 종법사님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종사주할아버지(대종사)는 어떤 분인가 궁금하였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린 듯 하였다. 이처럼 자애로우신 분이 신명을 다 바치셨다면 가히 짐작할만 하였다. 그러나 아쉽다. 대종사님을 친견은 하였으나 기억이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새 회상의 주세불이신 소태산 대종사님을 친히 찾아서 제자가 된 후에는 불변의 신의로써 회상 창립을 보필하고 종법사가 된 후에는 원불교의 교명을 선포하고 교재를 정비하여 대종사님의 경륜을 드러내고 교단을 반석위에 세우시어 일원대도를 드높이 들어내신 제법의 법모이시고 자비의 어머님이시다.

“아가, 원불교를 잘 믿어라. 할아버지(팔산 김광선)의 훌륭하심을 본받아야 한다”하시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똑똑히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헤어질 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총부에 가면 부처님이 계신다. 그 부처님을 보면 종사주할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알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는 자주 들려주었던 대종사님이 어떤 분이기에 그토록 칭찬을 하였는가가 이제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성자를 알아보고 신명을 바쳤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행한 정산종법사님을 뵙고 마음속의 대종사님이 새 회상의 주세불임을 조금이나마 인식하였고 이로 인하여 막연하던 타력신앙이 확고한 자력신앙으로 확립된 것이 아닌가 한다.

대종사님을 부처님으로 믿으면서 신앙심이 확립되었으니 스승과 신앙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일원상에 대한 신앙심도 그때 확립되지 않았나 한다.

<어양교당 교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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