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제중의 서원

나는 원기47년 3월 2일 원광대학교 교학과에 입학했다.

영산에서 태어나 영산에서 자라면서 보고 듣고 한 것, 이리에 와서 학생회를 다니면서 배우고 생각한 것이 모두가 원불교적으로 살아온 생활의 연속이었다.

팔산(김광선 대봉도) 할아버님은 원불교 초창기에 대종사님과 숙겁의 인연으로 만나서 출가하였고 형산(김형철 대봉도) 아버님도 할아버님을 따라 출가하였으며 그 자녀까지도 출가를 시키셨다.

어려서부터 온타원 어머님의 가르침으로 출가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알았지 나의 의지로 출가의 길을 선택하여 교학과에 입학한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출가하여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고생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고생을 낙으로 살아오면서 자식들까지 출가하도록 후원해 온 어머님이시다.

어린 저희들에게 자주 들려주신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여기는 너희 집이 아니다. 너희가 자랄 동안만 머무르는 곳이다. 영산이 너희들 집이다. 나는 너희를 힘껏 가르쳐서 원불교에 내놓는 것이 희망이다.”라고 늘 말씀하였기에 교학과를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교학과를 보내면서 말씀하시기를 “기왕에 전무출신을 하기로 했으니 할아버님과 아버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어머님의 소원대로 할아버님과 아버님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를 몰랐다. 훗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내가 팔산 대봉도님과 형산 종사님과 같이 신성과 공심, 사업과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님은 제 1방언공사때 바닷물이 뚝을 넘어 들어와 뚝이 무너지자 자신의 몸으로 물을 막았고 아버님은 제 2방언공사를 할 때 혹한에도 공사장에서 밤샘을 하였으니, 사무여한의 대신성 대공심을 내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도 한번 하기로 결심하였으니 할아버님, 아버님 그리고 누나와 형의 참 뜻을 이어받고 어머님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교화자가 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나는 어머님을 통하여 원불교에 대한 신앙의 싹이 트고 정산종사님을 만나므로 신앙이 확립되어 교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다른 동기생들은 교당이나 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교학과에 입학하였지만 나는 중·고·대학을 원불교에서 선정한 장학생으로 다녔으므로 누구보다도 원불교의 은혜를 많이 받은 셈이어서 그 책임이 더욱 막중하였다.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교학과에 입학하여 일반학과 학생들과 함께 교양과목을 공부하면서 원불교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교당에서 교무님의 설교로만 듣던 교리를 교수의 가르침으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막연하던 일원상의 의미와 삼학 팔조, 사은 사요를 해득하고 교사를 통하여 대종사님의 대각과 9인선진의 사무여한 정신을 배우게 되어 새 회상인 원불교가 창건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인 필연성을 알았다.

또한 대종사님이 주세불이고 정산종사님이 부처임을 알았고 왜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전무출신을 하였으며 어머님이 우리를 전무출신하도록 권장하였는가를 알만 하였다.

나도 이 공부 이 사업을 정성으로 하여 성불제중의 서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리공부에 심혈을 다 할 것을 다짐하였다.

<어양교당 교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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