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 활성화로 결실 맺자

▲ 나상호 교무
교정원 교화훈련부

기념성업의 기점을
개교에 둘것인가
탄생에 둘것인가
정확히 해야


사업진행으로 미뤄둔
교단문제 있다면
지혜를 모아야

정산종사 말씀하시기를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도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고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법어 무본편 52)고 하셨다.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드는 후래 대중들은 경전을 통해 받든 성인의 정신을 이 세상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그 정신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벌였던 정산종사 탄생100주년 사업 역시 그런 뜻으로 봉축했다.

이같은 기념사업을 마치고 나면, 으레 동 시대를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형의 자각이 아로새겨지지만, 뒤이어 이 회상에 참예한 이들에게는 유형의 기념물이나 후속 사업 등을 통해서 반추할 수 밖에 없다. 원음방송, 성주성지의 기념법당과 기도실, 성주삼동연수원, 역사 박물관, 기념 논총 등 유형의 성과들은 역사를 통해 전해질 것이다. 여기에 정산탄백사업의 계승 사업인 ‘삼동평화재단’이 종교연합운동, 환경운동, 통일운동, 국제구호활동, 영성운동(마음공부) 등을 목적사업으로 하며 최근 발족됐다.

성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예지(叡智)가 없이 한다면 과오를 범할 것이다. 더욱이 기념대회를 1년 4개월여 넘긴 시점에 사업 진행과정과 결과를 평가하기에는 시의적절치 못한 듯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평가는 새로운 계획의 시작이라는 뜻을 함유하기에 독선적 시각만 아니라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흔히 기념사업을 평가하는 규준 중 하나로 이 사업이 교화의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가를 든다. 그것은 반백년기념대회를 마치고 이뤄낸 놀라운 교화성과에 비해, 소태산 대종사 탄생100주년성업 이후의 교화성과가 그에 크게 못 미쳤다고 평가되었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 메머드급 행사의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성업이 불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메머드급 행사에 진력함으로써 정작 교단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이나 질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 유예되는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들 때문에 정산종사탄백사업회 실무진들은 사업 내내 정산종사의 사상을 널리 드러냄과 동시에 교화를 염두에 둔 기념사업을 전개한다고 강조했었다. 건국론의 재조명을 통한 건국사업의 계승, 삼동윤리사상의 조명을 통한 은혜로운 세계공동체 건설, 마음공부운동의 사회적 확산 등을 사업의 기저로 삼고 보본을 위한 장엄사업과 장기적인 교화기반 조성 사업을 모토로 하였다.

정산종사탄생100주년 기념대회를 치른 대중들 중 일부는 아직도 하나의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막대한 기념사업비를 직접 교화에 투자하지 않고 장기적인 교화기반 조성이라는 간접 교화에 투자한 그 ‘기회비용’이 과연 효율적인 성과로 나타날 것이냐는 것이다. 이 간접투자가 목적한대로 직접 교화를 서서히 돕는 기능을 하면 다행이지만, 도리어 또 다른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면 직접투자의 기회는 연거푸 지연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정산종사의 탄생백주년 행사를 기점으로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일보다 대각개교절을 교단 최대 경축일로 정한 교법정신을 생각할 때, 앞으로 기념성업의 기점을 개교에 둘 것인지, 탄생에 둘 것인지 지표를 정확히 해야 할 것이다.

정산탄백사업의 종결과 동시에 이루어진 교단 제3대 제2회에 진입한 우리는 기념사업의 정신에서 무엇을 전감 삼을 것인가? 그리고 각기 다양한 일터에서 교법을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공동체정신을 어떻게 구현시켜갈 것인가를 우리 모두의 숙제로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혹 탄백사업 진행으로 인해 유예됐던 교단의 근본문제가 있다면 다시 찾아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칫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써 교단적 사안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예단하려 하는 구습들은 놓아야 한다. 그것은 미주선학대학원의 개교를 앞둔 이 시점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정산종사 탄백 기념사업의 후속사업으로 탄생한 삼동평화재단이 옥동자로서 길이 빛이 발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변혁을 위한 출발선을 바라만 보지 말고 서원으로 나란히 그 앞에 함께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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