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탐과 갈증 그리고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

앙상한 감나무 잔가지가 하늘을 떠받치고 선 벌곡교당 앞마당에는 햇살에도 녹지 못한 눈이 소복히 쌓여 백지를 만들고 있었다. 창가로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가 싶더니, 법당 문을 들어서자 이진하 교무가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고 반가이 맞아준다.

“사실 난 시가 무엇인지도 몰라요. 단지 내 감정을 말로써 표현 못하는 성격 때문에 그 대안으로 글을 쓴 것이죠." 그의 시는 가슴에 남아있는 삶의 응어리를 푸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응어리들을 묶어 시집으로 엮었다. 그것이 벌써 6권의 시집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시집을 내고나면 일상처럼 따라다니던 과거의 그림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홀가분해요. 그리고 내 생활은 다시 시작이 되는 거죠. 아마 새로운 출발이라고 해야 되겠죠." 즉 시집은 곧 지금까지 걸어온 과거로 부터의 결별이요, 지나온 부끄러움을 불태움이요, 과거의 거짓된 삶을 묻어버리는 작업이다.

특히 그의 시에는 삶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석류 알갱이처럼 알알이 박혀있다. 그런데 누가 그 속을 알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시집을 꺼내며 “자네,/거기서 뭘 하는가?//아, 이 사람아/그래도 날마다 하는 일이/있을 것 아닌가//아직 펄펄한 사람이/그래 뭣이라도 해야지/무위도식하면 쓰나!……밤 자고 일어나 하늘 보고/청소하고 밥 해먹고/틈내어 산행하고/마당에 풀 뽑고 합니다//입 가에 감감도는 말/내 놓고 할 수 없어/ 얼버무림……" ‘얼버무림'이란 시로 대신 한다.

또 이것이 상처되어 “손 끝에 잡히는 풀/있는 대로 뽑고 뽑아도/돌아서면 도로 그 자리……무엇 하자함 아니요/어찌 하자함 아닐진대/생명의 긴 숨 나들이" ‘무위도식'으로 새어 나왔다.

그의 시 속에는 늘 ‘애탐과 갈증 그리고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 이 잘 보인다. 어찌보면 화두를 풀어논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마음에 담긴 삶의 이야기들을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논 것 같기도 하고. 울타리가 없는 벌곡교당처럼 그의 삶과 시에도 울타리가 없어 자연스럽다.

이런저런 이야기 두런두런 하다 털고 일어서니, 산자락에 붙은 그의 공간에는 벌써 햇살이 스러져, 하루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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