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수
예비교무 교육과정에서 기본교학에 해당하는 내용을 강의하기 시작하면서 원불교학 논문이 쓰여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물을 가지고 있다.

논문발표에 불지핀 《반백년기념문총》

원불교학 논문은 교단의 기관지인《원광》에 교리해설 성격의 글들이 게재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 《개교반백년기념문총》의 발간이 원불교학 논문발표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재직하는 교수들이 원불교학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학계에 원불교학이라는 분야를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원불교사상연구원과 종교문제연구소

연구 환경에 있어서는 1974년에 대학에 교책연구소인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설치되어 매년 원불교사상 총발표회를 개최하고 그 성과를 《원불교사상》이라는 학술지로 엮어내면서 원불교학 연구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이보다 앞서 1967년에 설립된 종교문제연구소는 인접학문과 타종교에 대한 연구에 역점을 두면서 원불교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보하게 되었고 특히 매년 일본의 불교대학과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원불교 사상을 국제화하는데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다.
원불교학 저서 발간, 대중화의 전기

70년대 후반부터는 원불교 사상의 연구물을 저서로 출판하여 전국의 도서관 등 외부 연구자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원불교학 대중화의 문을 여는 전기가 되었다. 기존의 팜프렛 형태의 안내서가 외부인 접할 수 있는 원불교 자료였던 것에 비하면 학위논문, 전문 학술지 발간, 원불교사상에 관한 저서의 출판 등은 실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원광대학교의 역할

학문 연구는 주로 대학 내에서, 또는 대학이 주체가 되어 수행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연구기관과 기업체가 후원하거나 직접 운영하는 연구기관들이 많지만 여전히 인문학의 경우는 대학이 연구의 산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원불교학의 경우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광대학교가 있고 그 안에 원불교학과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 모든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교 반백주년을 비롯하여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의 일환으로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할 때도 여전히 원광대학교에 근무하는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행사의 진행, 국내외 연구자 선정 및 연구발표 도우미로 활동하였고 직접 연구발표에 참여하여 국내외 석학들에게 원불교사상의 진수를 접할 수 있게 하였다.

또 그 결과물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홍보되었고 논문집으로 출판하여 후학들이 심층적 연구를 수행하는데 자극제가 되고 길잡이가 되도록 하였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은 한결같이 이 모든 연구활동의 중심에 자리하였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그 역할을 담당해나갈 것이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설립되고 원광대 대학원에 원불교학 연구자를 위한 석·박사과정이 설치되면서 교무들의 연구의욕이 크게 고양되어 많은 연구성과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비해 이들 연구물을 게재할 학술지는 사상연구원에서 연 1회 발간되는 《원불교사상》에 불과하였다.


《원불교사상》과 《정신개벽》

그래서 30대 초반의 젊은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1981년에 신용교학회라는 연구단체를 결성하여 《정신개벽》이라는 연구지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원불교학 연구 인력은 2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 걸쳐 폭넓은 분포를 보이게 되었다.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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