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두성리공부를 함에 있어 대다수 공부인이 직면하는 난제중의 하나는 어느 누구에게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세상의 다른 어떤 일보다도 대장부 일대사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시대에 법 높고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정안(正眼)종사를 찾기가 어렵고 설혹 선지식이 계신다고 하여도 상호간의 연분이 없으면 한 두 번 찾아가 두어 차례 문답하는 것으로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원래 사제간이란 제자가 스승의 곁에서 오랜 세월 지내면서 훈습을 받는 가운데 서로 법정이 건네며 시절인연이 도래하는 것이 이상적인 과정인데, 우리네 일상이 바쁘다 보니 이런 일은 이제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혼자서 구도하고 깨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이는 잘못하면 스스로 자존자대하여 아닌 자리에 안주하기 쉽기 때문에 조심할 일이다. 때문에 옛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안목이 열렸다고 생각되면 명안(明眼)종사를 찾아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받으라고 당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공부의 진도가 나가면 선지식을 찾아뵙고 문답 감정을 받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서로간의 연분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인간관계란 원래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간에 끌리는 것이 있어야 깊은 사귐이 가능한 좋은 인연인데 이는 다분히 전생사에 연유하는 것이니 인연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저 일반 공부인은 열심히 공부하여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가 묻는 것으로 서로 인연을 가깝게 맺는 수 밖에는 없다. 일반적으로 고수일수록 상근기를 알아보고 대우해주는데 상근기란 신분의성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니 그저 공부에 욕심을 내볼 일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되도록 나보다 법 높은 고수들과 어울리며 그 집단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래야 수행에 대한 고급정보도 얻고 인연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에는 한 평생을 일상적인 삶속에서 구도하고 생활속에서 불법을 실천하며 수행에 전념하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강호에도 수많은 기인이사와 선지식들이 많기 때문에 의두성리공부에 있어 문답·감정·해오를 하는 것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을 보자면 원불교는 아직 대종사를 직접 모시고 공부한 분들이 살아 계시는 정법시대며, 한국불교도 제방의 눈푸른 납자들을 제접하는 명안종사가 부처의 정법을 제대로 계승해 가는 전통이 살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한국적 수행 여건에도 불구하고 스승에 대한 갈증이 크다면 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허공법계는 항상 “어디 진실한 수행자가 있다면 잘 인도해 볼텐데” 하는 입장이니 이에 부합되도록 노력하면 하늘의 적절한 안배에 의해서 원하는 것은 다 얻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행자는 먼저 자신의 성정을 다스려야 한다. 거칠고 사나운 심성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보통급 계문을 잘 지키는 것이 바른 시작이 된다. 대다수의 종교가에서 초급자에게 제시하는 계문은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한데, 그것은 처음 입문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구도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살도음(殺盜淫)과 거짓말 술을 마시지 않는 것들이 초급자에게 주어지는 공통적인 계문인데, 이는 모두 중생심이 크게 발휘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생각을 내면으로 향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이중에서 지나친 주색은 사람의 기를 태우거나 정을 소모시켜 노화를 촉진하고 마음이 중생심과 육신의 철없는 요구에 지게 하여 그 관심이 밖으로 향하게 하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어 밖으로 향하던 생각이 안으로 되돌려지면 마음공부에도 관심이 가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존재의 근원에도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이런 의문에 공부의 초점이 모아져 어느 정도의 정성어린 노력 끝에 공부가 한 고비를 넘으면, 허공법계의 배려에 의해 수행자는 우연한 기회에 신문이나 TV 아니면 책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아니면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는 환경이나 인연을 만나게 되는 상황으로 인도된다.

현대가 정보화사회이니 만큼 의두성리공부에 대한 대체적인 정보는 어느 곳에든지 널려있다. 서점에는 관련서적으로 넘치며 인터넷에는 고급정보는 아니지만 중하급의 정보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될 가장 큰 문제는 “과연 나는 잘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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