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넉넉했던 시절

일상은 어려웠지만 좋은 도반이 옆에 있어 큰 힘이 되었던
교화 초년시절 그리워···

교무님!

봄이 아직 오려면 멀었다고 느꼈던 그 어느해 이른 봄날, 금잔옥대 수선화가 마당 가득 피었던 때를 그려 봅니다.

교당의 간판을 부친지 몇 달되지 않아 모든 면에서 궁핍하고 추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햇살은 아침에 올라와서부터 저녁에 질 때 까지 넉넉히 배부르게 해주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을 때, 무엇이 그리 늘상 바쁘고 또 기쁘게 살았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곤 합니다.

아마 일상은 어려웠지만 좋은 도반이 옆에 있어 큰 힘이 되었던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날들이었습니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처럼 작은 것 하나도 생기면 서로 못 주어서 한이 되었습니다.

교무님!

그 시절은 참 가난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넉넉한 부자였습니다. 먹을것이 없어서 하숙을 쳤지만 기죽지 않았고, 당당했습니다. 그 생활의 수단이 바로 인재양성으로 까지 이어졌던 다. 젊은 날 우리의 멋졌던 날을 떠올리며 오랫만에 행복에 젖어 봅니다.

교화의 초년생들로써 서로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대화하며 마음끈을 이어갔던 것이죠. 우리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과 교도님들도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빈 마음으로 서로를 채워서 하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중한 그날들이 느껴집니다.

“얼마나 능력이 모자라고 인정을 못받으면 늘 고생스러운 곳만 가느냐”고 힐책하던 형제들의 소리도 오히려 나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고 겸손하게 한 경책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교무님!

급변하는 시대 상황따라 모두들 변한 것인지요?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사는 우리들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맡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찾도록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무님!

만나지 않아도 늘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 먹지 않아도 늘 배부른 것 같은 포만감, 가지지 않아도 우주가 다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부족한 저를 믿어주고 챙겨주며 그윽히 지켜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힘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생기고, 기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정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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