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타원 성보영 정토

연타원 성보영 정토에게 정산종사는 늘 마음속에 살아계신 스승이며 아버지시다. 성 정토는 지금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정산종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희망과 용기를 얻곤했다. 마음속에 신앙처럼 새겨져 있는 어른이다.
성 정토가 여고 2학년때, 한번은 위경련이 일어나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어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이때 정산종사는 성 정토의 문병을 오셔서 성 정토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너 아버지 (성산 성정철 종사) 보고싶지?”하였고 성 정토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정산종사는 이어 “내가 네 아버지다. 병에는 육신병과 마음병이 있는데 마음병은 고치기가 힘들지만 육신병은 곧 낫는다. 의사 말 잘 듣고 치료하면 낫는다. 너는 정법회장 만난 복많은 사람이다”고 다독여 주었다.
성 정토는 “그렇게 나를 다독거려 주신 정산종사께서 다녀가신 다음날 복용한 약을 먹고는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아마도 정산종사께서 크신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금방 나아버렸나 봅니다.”고 회고 했다.
어느 누구보다 큰 사랑과 은혜를 받고 자란 성 정토는 정산종사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적이 있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서울지역 대학과 원광대학을 두고 갈등을 겪다가 원대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는 실력만이라도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화여대에 시험을 치기로 마음먹고 정산종사께는 부산 이모님 집에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차마 시험보러 간다고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어요. 사실 그때까지 나는 이화여대 시험만 치고 원불교학과에 진학하기로 어머님과도 약속 했었거든요.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향 6촌 오빠의 출현으로 진로가 바뀌고 말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어른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정산종사는 한번도 성 정토를 꾸중한 일이 없었다. 방학때면 오히려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었다.
“공부 잘 하느냐? 건강해야 한다. 네가 앞으로 우리 공부를 잘 하려면 기독교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학교 아니냐? 그러니 예배도 잘 보고 모든 것을 잘 배워가지고 큰 일 해야 한다”고 격려해주었다.
또한 대학에서 신(神)에 대한 토론을 하고 그 말씀을 드리면 정산종사는 “진리는 하나다”고 선명하게 깨우쳐 주셨던 기억도 성 정토에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후 성 정토는 여산 류기현 원로교무와 결혼한후 장수수양원에 계신 정산종사를 뵈러갔다. 인사를 드리며 “전무출신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니 정산종사는 정토로서의 역할을 당부해주었다.
“기현이 뒷받침 잘하면 전무출신 잘 할것이고, 그 뒤를 이어 전무출신이 많이 나올 것이다. 보영이도 전무출신 정신으로 열심히 살면 생활은 점점 풀어질 것이다.”고 하시며 “이제 나한테 미안해할 것 없다. 그 정신으로 열심히 살아라”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원광여중 창립당시 근무하게된 성 정토는 정산종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용기와 희망의 말씀을 받들었다.
“교육은 도학교육과 과학교육이 있다. 도학을 바탕한 과학교육이 되어야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너는 지금부터 도학공부를 해서 도학에 바탕한 과학교육이 되도록 해라. 그래서 장차 원광여중의 주인이되라”
학생들을 상담하며 상담의 본질을 정산종사님으로부터 배웠다는 성 정토는 정산종사는 ‘훌륭한 상담자, 내 인생의 거울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산종사는 열반전 성 정토에게 “대도회상 만났을 때 마음 공부해라. 영생 닦는 공부를 해야지 다른 것은 다 소용없는 것이다"고 법문하였다.
연타원 성보영 정토는 정산종사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 원광여중 교장을 역임하는등 40여 성상을 교육계에 투신했으며, 이공부 이사업에 오롯한 공심과 서원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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