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보시를 함부로 받지 마라

인과 아는 사람은
보시 받기 싫어하고,
인과 모르는 사람은
보시 받기 좋아 한다

옛날 어느 선사가 과실수를 심어서 상좌를 먹여 살렸다.
제자는 “스님 절 형편이 넉넉한데 상좌를 따로 과실을 심어 먹이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주지 스님은 “전생이나 금생에 복지은 바도 없는 상좌가 아니냐? 신도들이 복을 비는 전곡을 먹이면 그 빚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는 갚을 능력이 없지 않느냐”며 “한생을 얻어먹고 여러 생을 우마(牛馬)가 되어 갚게 될 줄을 내가 잘 알기에 빛을 덜어 주고자 과일 나무를 심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어 한 마디 덧붙이기를 “이것이 사제간에 정의(?意)이다.”고 말했다.
선사의 처사한 내용을 들으시고 대종사는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이 법문을 가볍게 듣지 말아라. 정신·육신·물질로 남을 위하는 노력이 없이 중인의 보시를 받는다면 큰 빚을 지는 것이다. 반드시 여러 생의 노고를 각오 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한산과 습득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후신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한산과 습득은 암자를 가다가 소떼를 만났다.
먼저 한산이 소들에게 말을 건넸다.
“어이! 스님네들 소가죽 쓰고 사는 맛이 어떠한가? 시주 물건 잘도 쓰더니만 이렇게 될 줄을 몰랐단 말인가?”
이번에는 습득이 소리를 쳤다.
“오늘은 여러 도반들과 무상 법문을 나눌까 하네. 법문이라면 자네들도 능하지 않는가? 내가 부르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게나”
“동화사 경진 스님!” 그러자 누렁소 한마리가 ‘음메!’하고 나오더니 두사람 앞에 무릎을 끓고 절을 했다.
“다음은 천관사 형지 스님!” 다음은 “정은사 일곡 스님!…” 이렇게 이름을 불러대자 30여 마리 소들이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한산과 습득은 법문을 했다.
“스님들, 수도인이 소가죽 쓰는 과보를 당하니 어떻소? 무슨 죄목으로 소 가죽을 쓰게 된 줄 아시오?”하며 일일이 열거했다.
첫째 시주밥 먹고 수도에 등한 한 죄목이요, 둘째 시주물을 받아먹고는 축원 하여 주지 않는 죄목이요, 셋째 시주물을 물쓰듯 낭비한 죄목이니, 인과 보응의 진리로 보면 소가 되어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모든 소들이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는데, 한산과 습득은 혀를 차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수도인들이 대중들의 복을 비는 재물을 축 내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한다는 법문이다.
대종사는 “인과를 아는 사람은 보시 받기를 싫어하고 대중들이 복을 비는 재물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과를 모르는 사람은 보시 받기를 좋아 하며 참으로 두려움도 없이 대중들의 보시물에 손을 잘 댄다”고 하였다. ?
<하섬 해상훈련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