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타원 윤주현 원로교무

▲ 정산종사께서 “알맹이 있는 염불 하라”며 주신 염주를 들고 일생을 수양정진에 힘써온 주타원 윤주현 원로교무. 염주는 처음에는 하얀색이었는데 틈나는대로 염불에 열중하다 보니 검정색으로 변했다
주타원 윤주현(主陀圓 尹周琅) 원로교무는 수학시절 정산종사께 좌선이 잘 되지 않는다고 여쭈었다.
"제가 일년이나 선을 했는데 마음이 오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라고 여쭈니 정산종사는 오분 정도의 정력이면 상당한 것이다. 일분은 일심이 되느냐? 일년 선을 해서 일분만 일심이 되어도 앞으로 선을 잘할 사람이다. 일분을 삼분, 오분, 십분으로 늘려가다 보면 한시간도, 하루도 선정에 들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였다.
윤 원로교무는 이처럼 항상 희망적인 말씀으로 북돋아 주셨던 정산종사의 말씀을 받들고 큰 힘을 얻었으며, 이후 수양정진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됐다.
또 정산종사는 심고에 대해서도 자주 말씀해주셨다.
“조석심고가 일, 이분 하는것이지만 그 위력은 참으로 무섭다”고 강조하시며 “만약 일생동안 조석심고를 지속한다면 악도를 면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어렸을때부터 나이팅게일과 같은 간호사가 되고자 했던 윤 원로교무는 한국여성 운동에 관심을 갖게되어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국문과에 입학, 고향인 남원 용성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원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윤 원로교무가 정산종사를 처음 뵙게 된 것은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입학하여 인사차 조실에 갔을때였다.
“내가 본 정산종사의 첫 인상은 만월과 같으셨고,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으시며 ‘잘왔다. 잘왔어 윤선생이라고 했지’하시며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정산종사는 “희망이 뭣인고?”라고 물으셨고 윤 원로교무는 서슴없이 “한국 여성운동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래 삼천만 민족 중 일천오백만 여성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셨다.
윤 원로교무는 다시 당돌하게 정산종사께 되물었다 “종법사님의 원은 무엇입니까?”그러자 “내 원은 인류 시방세계 육도사생을 제도하는 것이지”라고 하셨다.
첫 만남이었지만 정산종사는 윤 원로교무의 원을 최대한 큰 원으로 키워주셨다. 윤 원로교무는 그날 정산종사의 말씀을 받들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원을 알았고 그것을 나의 원으로 삼아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게됐다고 술회한다.
한번은 승타원 송영봉 원로교무와 함께 종산종사를 찾아뵌적이 있었다. 정산종사는 미리 준비해 두셨는지 염주를 하나씩 주셨다. 그리고는 “알맹이 있는 염불을 해라"시며 당부하셨다.
“그때 주신 염주는 처음에는 하얀색이 었는데 50여년 넘게 틈나는 대로 염불에 열중하다 보니 이렇게 검정색으로 변했습니다.”라며 들고 있던 염주를 보여주었다. 그 염주는 윤 원로교무가 가장 아끼는 것으로 재산목록 1호로 간직하고 있다.
원기40년 윤 원로교무는 부산진교당 교무로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 총부만 해도 콩깨묵으로 죽을 쒀먹을 만큼 가난한때였다. 그런데 부산진교당 교도들이 산해진미를 차려주는 것을 보고 총부 생각이 나서 목이매여 왔고 빚진다는 생각이 들어 정산종사께 상서를 올렸다.
정산종사는 그 편지를 보시고 ‘선무수도 천하귀도(先務修道 ?下歸道)’라는 글을 보내주셨다. 자신이 먼저 수도하면 천하가 저절로 돌아온다는 말씀이었다. 윤 원로교무는 일생을 이 법문을 표준 삼아 정진적공에 힘을 쏟았다.
윤 원로교무는 18년간 부산진교당 교화에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영산선원 교감, 부원장, 원장을 역임하며 오늘의 영산원불교대학교로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는등 인재양성과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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