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을  감동시키는 소리


대산종사께서 ‘세 가지 큰 소리’는 “마음이 통일된 데서 나온 소리요, 마음이 열려 깨친 데서 나온 소리요, 몸소 실천한 데서 나온 소리다. 이상 세 곳에서 나온 소리라야 만인을 능히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고 하셨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있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살아있는 소리 듣기가 쉽지 않다. 살아있는 소리라야 사람들의 영성을 일깨우고 맑혀줄 수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살아있는 큰 소리 듣기를 갈망하고 있다.
깨침의 소리는 혼탁한 세상을 맑혀줄 것이고,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깨침! 생각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깨쳤다는 도인들이 종종 나타나 세상을 현혹하지만 우리가 서원하는 깨침은 신비나 이적을 말하는 그런 깨침이 아니라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실제를 투득할 수 있는 정각이다.
정각(正覺)이란 무엇인가? ‘일원의 진리 곧 불조 정전의 심인을 오득함’이다. 이는 원래에 요란함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 그름이 없는 성품을 깨치자는 것이며, ‘시방 삼계가 다 오가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인 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견성인 것이다.
견성은 진리의 실체를 본 것이다. 이 깨달음은 곧바로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보림을 해야 한다.
그 깨달음이 자신의 삶으로 육화(肉化)되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성불을 했다고 한다. 이 성불한 사람의 삶은 구체적으로 육근을 통해서 나타난다. 눈, 귀, 코, 입, 몸, 마음의 육근을 통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육화되어야 한다.
정행(正行)은 ‘일원의 진리를 체받아서(正覺)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다.
깨쳤다고 바로 부처의 행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살짜리도 아는 일을 여든이 되어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실천에서 나오는 소리는 큰 소리다.
다들 진리를 설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매년 종교인구는 증가하지만 세상은 맑아지지도 않고, 밝아지지도 않고, 훈훈해지지도 않는다.
바른 깨달음과 실천하는 종교인이라야 진리의 핵을 소유할 수 있으며 세상을 살리는 큰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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