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자의 역할은 법회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것에 있지 않다
서로간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나누며
마음을 연하는데 있다


▲ 조명규 교무 / 정토회관
교화 3년차 부교무.
아직도 법회 설교 단상에 서면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3년전 첫 부임을 하여 대면식을 하며 나눴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청년들과의 첫 대면식에서 전 청년회장의 말. “교무님이 저희들에게 기대가 큰 만큼 저희들도 교무님께 기대가 큽니다.” 덧붙여, “설교를 정성스럽게 잘 준비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말만 떠올리면 지금도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청년회 담당 교무의 역할이 시작되었다. 첫 대면식에서 나눴던 말들이 지난 3년간을 긴장 아닌 긴장으로 설교단상에 서게 한 것 같다. 지나친 긴장은 주착이지만 적당한 긴장은 일심임을 알아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고자 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년이 지난 후 그 동안의 교화를 돌아보았다. 교화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그 평가 기준이 법회출석수에 의존함을 알았다. 교화의 가장 큰 중점을 법회출석수에 두다 보니 어찌하면 한사람이라도 더 출석을 시킬 것인가, 어찌하면 평균출석을 높일 것인가 하는 고민에 허둥지둥했던 한해였다. 숫자가 적어지면 따라서 의기소침해지고, 숫자가 많아지면 ‘그래 청년교화가 잘되고 있군’하며 위안을 삼기도 하였지만, 진정한 교화의 핵심은 이게 아닌데 하는 허전함이 많이 남곤 했다.
그러던 중 겨울 정기훈련을 하면서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교법에 의지해 해결점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 저기서 울음이 나오고 또 그 아픔들을 함께 해주는 동지들도 같이 울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항상 밝기만한 우리 청년들인줄 알았었는데 나름대로 진로와 가족관계 등으로 많은 고민들이 있음을 알았고, 교화자의 역할이 숫자 채우고 법회 진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서로 마음이 연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산종사님께서 종법사위에 계실 때 교학과 신입생들의 사진과 출가일성을 항상 벽에 붙여 놓으시고 기원을 해주셨다 한다. 나 또한 우리 청년들이 항상 바른 인재로 성장해서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주길 기원하면서 방에 함께 찍은 사진들을 붙여두고 기도를 드리곤 한다. 또 시간나는 대로 E-mail을 통해 나의 일상을 얘기해 주곤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였을까? 요즘은 상담을 요청해 온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어찌 해야 하는지. 청년교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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