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제복사 문정혜 교무

정화제복사에 근무하는 문정혜 교무는 여자교무들의 정복만을 일생동안 만들어 왔다.


20년 바느질 외길 인생
흰저고리 검정치마로 대변되는 여자교무들의 정복은 교단이 성장하기 전까지 원불교를 알리는 대표적인 홍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일반인들은 여자교무들의 정복을 보고 ‘원불교’라는 인식을 하니 여자교무 정복의 위력은 대단한 셈이다.
그 정복을 만들고 수선하며 쪽진 머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판매하는 곳이 정화제복사다. 문 교무는 정화제복사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정복을 만들어 왔으니 교화의 이면에서 숨은 공덕을 쌓아온 셈이다. 함께 근무하는 박양화 덕무가 저고리, 신기원 교무가 교복을 만드니 문 교무가 맡는 것은 치마·속치마·말기·법락·몸빼 등 ‘그 외 모든 것’이다.


챙기고 베풀기 좋아하는 천성
“14살 때부터 부산 초량교당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일찌감치 출가생활을 눈여겨본 문 교무는 영산선원(2년)을 마치고 수계농원에서 2년의 감원생활을 했다. 동산선원(3년)까지 마치고 교무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첫 근무지로 다시 수계농원에서 3년을 근무했다.
어렵게 공부했고, 수계농원과의 그런 인연에서인지 수계농원 출신의 어려운 교학과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용금을 나누어 매달 지원을 했다. 특별한 인연이 없어 수학에 곤란을 겪은 교학과생들에게 까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문 교무는 중국교화의 소리없는 후원인이기도 하다. 일찍 중국교화의 길에 나선 문영식 교무(옌볜)가 고종사촌이기 때문이다. 처음 정화제복사에서 받은 용금은 월 7천원에서 시작해 지난해 30만원까지 ‘인상’되었다. 문 교무의 이 용금은 고스란히 중국교화와 주변의 소외받는 사람에게 쓰이니 작지만 참 알차게 쓰이는 셈이다.
정화제복사가 수도원쪽에서 현 부지로 이사오기 전에는 퇴임한 여자 원로교무들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했었다. 이런 천성적 부지런함으로 총부 세탁부가 일손이 밀리면 어른들과 정남들의 한복 손질까지 마다않고 해왔다.

많지 않은 용금으로
어려운 인연들과
중국 교화를 위해 나누고
제복사 찾는
모든 여자 교무들
일도 보고, 편히 쉬도록
묵묵히 부대시설 제공

여자교무들 사랑방 제공
정복을 입는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예비교무들로부터 퇴임한 원로교무들까지 원불교의 모든 여자교무들은 문 교무와 일상의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문 교무가 주재하는 정화제복사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머릿기름 한 병 사러 와서도 주저앉아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를 음악삼아 교화담이나 일상사를 늘어놓곤 한다. 현장 교화의 모든 애경사가 이곳에서 소담하게 이루어진다. 문 교무에게 특별한 상담의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들어만 주고, 맘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모든 부대시설을 묵묵히 제공만 할 뿐이다. 총부 근처에서 검정치마에 흰색 실밥을 묻힌 이가 있다면 이제 막 문 교무를 만나고 온 사람이기 십상이다.

운주사의 길가 부처님 같은 편안함
숙소가 부족한 총부의 현실도 한몫 하겠지만 먼 교화현장에서 원광대 병원에 치료를 하러 오는 ‘환자교무’들까지 이곳을 편안하게 찾는다. 문 교무는 이들에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숙소를 제공하고 음식까지 정성들여 대접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문 교무가 주재하는 정화제복사는 중앙총부의 사랑방 역할에다 1년 내내 손님을 치뤄야 하는 여자 교무들만의 공중 숙소까지 겸한다.
일의 특성상 쉴새없는 일거리 속에서도 출가식과 법호수여식이 다가오면 문 교무는 제복사 식구들과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곤 한다. 그럴 때면 입술이 부르트고 얼굴이 퉁퉁 붓지만 문 교무는 이것을 모두가 교화라 생각하고 묵묵히 감내한다.
또 수행이 부족하다고 여겨 7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 서예이다. 틈틈이 글쓰고 그리기 시작한 문 교무의 실력은 전북대전에서 입선할 정도이다.
천성적으로 남을 챙기기 좋아하고, 가진 것 없는 절대 가난의 전무출신 삶속에서도 베풀기 좋아하는 문 교무의 일상은 협시보살 그 자체였다. 특별히 빼어난 보물이 없음에도 화순 운주사가 평이하고 서민적인 천불천탑 덕에 사람들을 고즈넉이 끌어당기듯, 정화제복사는 운주사의 천불천탑같은 문 교무 덕에 중앙총부를 찾는 여자교무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일머리가 없어 정화제복사를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문 교무는 오늘도 한땀 한땀 바느질하며 자기자리를 지키고, 묵묵하게 교화자들의 그루터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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