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의 첫 걸음과 출가 포기

▲ 원광여고 근무시절 반 학생들과 함께. 왼쪽 두 번째 모자쓴 사람이 필자.
대학졸업과 동시에 출가식을 마치고 원광학원 산하 원광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교직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평소 교직에 관심이 없어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어를 깊이 연구한 후 해외교화에 전념하겠다는 신념을 굳게 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학과 선배이고 원광여고 영어 선생님이신 정봉길 교무님께서 미국 유학을 떠나시는 바람에 내가 그 자리에 발탁된 것이다.

아타원 전팔근 전 원광대학 부총장님과 보타원 박명제 현 영광교구장님의 추천이 있었다는 것을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주일에는 해맑고 예쁜 여고생들을 가르치고 일요일에는 총부 법회를 보면서 4년이 흘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대학원의 꿈이 도사리고 있어 하루는 용기를 내어 헌타원 정성숙 교장선생님께 휴직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예상했던 대로 헌타원님은 강력히 반대하셨고 사직서를 내자 매우 서운해 하셨다.

막상 상경하여 여러 대학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학부에서 이수한 과정과 대학원에서 전공하려는 과정(영어)이 상이하여 원서조차 낼 수 없음을 알자 크게 실망했고 헌타원님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전무출신이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 수 개월간 사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뜻밖에 광주동신고등학교 이사장님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만나 뵈온 즉 1개월만 2학년 영어수업을 맡아 주면 그 사이에 영어교사를 구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쯤이야 어렵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있었는데 한·두 달, 1·2년이 가도 영어교사를 구하지 않고 붙잡기만 하셨다.

무려 8년간 근무하면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수료한 후 같은 재단인 동강대학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강대학 재직중 조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도 마쳤다.

광주로 내려 온 후 3, 4년 동안은 교당에 나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학원엘 간답시고 전무출신을 버리고 속세에 묻혀 있다는 죄책감에 교무님들 뵐 면목이 없었고, 진리와의 약속을 어긴 자괴감 때문이었다. 견디다 못해 총부 육영부장님께 인편으로 나의 뜻을 말씀드리고 3년6개월 즉 7학기동안 내가 대학 다니면서 받은 장학금 총액을 알려 주시면 모두 환불해 드리겠다고 했다. 얼마 후 연락을 받고 수혜받은 장학금 모두를 보낸 후 고맙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 후에야 다소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마치 오랜 고질병이 치유된 것 같이 마음이 상쾌하고 성격도 활발해졌다. 다시 교당에 가야 된다는 사명감도 가슴 깊이 솟구쳐 서광주교당을 거쳐 지금은 동광주교당에서 내 딴에는 열심히 일원상의 신앙과 수행을 하고 있다.

<동광주교당 부회장·동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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