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 대산종사와 황직평 원로교무를 모시고 기념촬영.
어느 날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왈칵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죽자살자 40여년을 열심히 뛰어 다니며 ‘내가 공부 잘하는 것이리라’ 생각해 왔는데, 막상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법회출석을 열심히 한 것, 법문 사경을 죽자고 한 것,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가방만 메고 덜렁덜렁 다니는 어깨 쳐진 초등생이었다.

만덕산을 찾아서 훈련을 떠났다. 하선 때도, 동선 때도. 승산 양제승 종사는 그곳에 변산 구곡로의 돌처럼 그렇게 서 계시며 오년전이나 일년전이나 일원상의 진리만 설하고 계셨다.

일원상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 “그 자리를 사량이나 계교로 얻으려 말고 관조로써 깨쳐 얻어라”하시니 바로 그냥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부처임을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구나.

처음 만덕산을 찾았을 때 늘 푸른 눈이라 했던가. 어린이나 칠십세의 노인이나 열망에 가까운 살아 있는 눈들이 번쩍였다. 나는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 승산 종사께 여쭈니, 한참 묵연하시다 “서원이 없어서 일 것이다”고 하신다.

그렇다. 한 소식 듣겠다는 서원, 모든 것을 밖에서 구하려 말고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텅비고 툭 터지고 걸리고 막힐 것도 없는 그 자리, 무어라 말로는 할 수 없는 그 자리를 비로소 알 듯 보일 듯 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정법을 만났고, 훌륭한 스승님들을 모실 수 있었으니 행운아이다. 대산종사님은 아버님으로 늘 가까이에서 훈증을 받을 수 있었고, 나 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휴가 때면 종법사님 계신 곳을 찾게 되니 따로이 손잡아 주시지 않아도 무슨 말씀이 없으셔도 세상사 시름이 녹아나고 넉넉해짐을 느낀다. 그 은혜에 보은하는 길이 바로 일원대도 선양하고 제생의세에 전심전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덕산에 무엇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만덕산이 있고 스승님이 계시고 동지들이 기다리고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과 대산종사님의 숨결이 살아 쉼쉬는 곳이기에 찾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호수에 쏟아져 내리는 은하의 수 많은 별들, 개똥 벌레가 활공하는 산책로에는 평화가 있고 넉넉함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생활을 통하여 정신의 자주력과 육신의 자활력과 경제의 자립력을 세워 나가기 위하여 아침은 수양정진 시간으로, 낮은 보은 노력의 시간으로 밤은 참회 반성 시간으로 정하여 새 생활 개척에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다.

오늘도 나는 지구의 한 귀퉁이를 쓴다는 마음으로 대산 종사님 심고문, 기원문결어와 새삶기원문을 법신불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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