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회 창립과 딸의 출가

▲ 황직평 원로교무와 함께.
더듬어 올라가니 내가 30대 초반에 청년운동을 같이 했던 우리 청년회 1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에서 청운회를 결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목회 형식으로 매월 만나서 법회보고 우정을 다졌던 그 시절, 초대 회장은 교의회 의장을 역임하셨던 김경원 회장이셨다. 이 활동에서 총무 직책을 맡아 통신문도 만들어 띄우고 일일이 전화해 독려도 하고 호소하기도 한 참 어려운 운동이었다.

이 큰 뜻은 전국적인 모임으로 확산 보급하자는 기운이 돌아 마침내 이리, 전주, 대전, 광주, 부산 등의 옛 인연들이 다시 모여 연합회가 결성되었고, 전국 초대 회장에 원남교당 회장이시며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시던 보산 고문국님, 국토통일원 부원장을 하셨던 조정제 박사를 사무총장으로 청운회가 거듭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청운회가 지금과 같이 거대 조직으로 각 교당마다 결성되어 교화 일조를 담당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이로서 이 땅에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인류개진 운동으로 도덕발양 운동, 인류보본 운동으로 보은동산 운동이 탄생하여 두 기틀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어 청운회는 그늘진 이웃, 손길이 닿지 않는 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은동산을 창립했다. 이를 토대로 대산종사의 유시로 인류개진 운동의 확산은 새삶회 라는 이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새삶운동은 대대종사의 일원대도, 정산종사의 삼동윤리‘정토들의 잔치’ㅣ , 대산종사의 하나의 세계 건설의 게송은 보편 타당한 윤리로서 이 사회, 국가 세계 전 인류에게 보급하자는 목적이다.

청운회와 새삶회의 초창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음도 나에게는 큰 영광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청운회장단 훈련에 갔을 때 효산 조정근 당시 교정원장이 “대종사의 장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교단에 바칠 수 있었야 되지 않겠느냐”하고 말씀을 하셨다.

귀가하여 생각에 잠겼다. 큰딸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던 터라 대학 진학도 그 방향으로 잡고 있었다. 이런 딸에게 대학을 다니면서 시민 선방도 다니고 만덕산 훈련도 참가하더니 엄마 아빠의 말대로 서원을 세워 출가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침묵의 강에는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 딸은 영산원불교대학 3학년으로 편입하여 지금 중앙중도훈련원 교무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교구 장충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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