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선 교무 <교화훈련부>
어린 날 ‘피노키오’라는 동화를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최근 ‘피노키오’ 영화를 보면 어린 날 읽었던 동화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받아들이는 느낌은 많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했다. 또 마음공부를 하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노키오는 특별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말을 할 줄 아는 나무. 우리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특별하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가면서 부처되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다.
‘피노키오’의 최대목표는 학교를 가고,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 꼭두각시극장에서 자신과 똑같은 꼭두각시들과 어울리면서 곤역을 치룬다. 두 번째 학교 가는 길에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만나서 엉뚱한 사건에 연류되어 한 동안 감금생활을 하게 되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열심히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세 번째 길에서 만난 장애는 막강한 유혹 ‘놀이동산’이 피노키오를 끌어 당긴다. 노는데 열중하고 책임없는 삶에 치중하며 살다보니 ‘피노키오’는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리어 당나귀로 바뀌는 삶을 살게 된다.
또한 ‘피노키오’의 아버지는 자식의 방황에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했으며 ‘요정’은 더 이상 믿음을 갖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보살핌과 관심 그리고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헤쳐가는 과정에서 ‘피노키오’는 착한아이가 되고 학교를 가게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학교와 착한아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피노키오’의 해피엔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도 부처가 되고, 우리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은 생의 탄생과 함께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그 문제 안에 갇혀 어느새 목표를 잊고 사는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문득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게 되고 다시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기를 반복한다.
또한 우리의 성장 속에는 혼자만의 의지와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보살핌과 스승님의 끊임없는 촉구 속에서 성장한다.
피노키오에게 다가온 장애들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유혹의 경계와 유사하다. 단지 그것을 우리 스스로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발견 후의 대처방법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바로 ‘신·분·의·성’ 진행 4조로써 우리는 공부해야한다. 분명 우리에게는 마음을 자유로 사용할 힘이 있고 부처가 될 힘이 있는 존재들이다.
오늘도 우리는 ‘피노키오’의 유혹에 얼마나 넘어갔는지, 유혹이 있는 줄은 알고 있는지, 사실적으로 점검하며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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