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 기숙사 생활의 편린들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고
남몰래 챙겨주는 법우들
이들의 순수한 마음속에서
나의 오만함 반성하고 성불 다짐


원기49년 8월 25일경 나는 원불교 교무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총부 남자 기숙사에 입사했다.

어떤 법우는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용품, 또 어떤 법우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학용품을 챙겨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사실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리자 저녁식사 알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앞서 나가 내 신발을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는 법우도 있었다. 법우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챙겨주고 도와주는 덕에 서먹 서먹했던 기분은 어느덧 사라지고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다.

법우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고운 마음씨들 속에서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차이를 확연히 깨닫고, 과거 나의 무종교관이 얼마나 잘못되고 오만한 태도인가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훌륭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오직 나에게 있을 것인즉 어떠한 경계라도 헤쳐 큰 인격 갖추고 큰 인물 되어보리라 굳게 다짐했다.

총부 기숙사 생활은 새벽 4시 기상, 심고, 좌선, 독경, 체조, 청소, 세수, 아침식사, 오전 강의, 점심, 오후강의, 저녁식사, 밤 9시30분 심고, 상시일기 및 하루반성, 10시 취침이었으며 이런 생활은 내내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일요일 법회는 주로 총부 어른들께서 주관하셨으나 수요일 야회 만큼은 남녀학생들의 몫이었다. 예회에 학생들만 참석하지 않고 총부 어른들 모두가 참석하시기 때문에 설교를 맡은 학생은 순서가 되기 몇 주 전부터 원고 작성하느라 거의 다른 일을 못할 정도이고 시일이 다가올수록 긴장되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특히 여학생들이 더욱 심했는데 남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30분 정도의 설교시간을 채우고 나오지만 여학생들은 숨어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도 학창시절 두 번의 야회 설교를 했는데 그 때마다 몇 킬로그램씩 살이 빠지는 듯 했고 설교를 마치고 나면 등에 땀이 후줄근했다. 타고난 재능으로 달변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무님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의 교무님으로 탄생을 하신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장차 국내교화보다는 해외교화에 뜻을 두고 주로 영어공부를 많이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영어가 모든 과목중 제일 재미가 있어 영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웠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약 10km되는 시골길이라 등하교길에 그저 영어책만 들고 반복을 거듭하면서 외워댔다. 그 덕분에 광주고등학교 입학당시 영어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아 합격했다. 영어의 인연으로 아타원 전팔근 전 원광대 부총장님께서 많이 챙겨주시고 장차 해외교화에는 영어가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많은 훈증을 내려 주셨다. 그 은혜…정말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동광주교당 부회장·동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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