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이란 화두 들고 10년전 출가
한국어와 한문, 음식·기후 등 이겨내고
불법의 원류지 인도에 원음 전할 원불교의 현장법사

▲ 원현장 교무 인도 뉴델리 개척
“부처님 고향에서 새 불법을 전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원불교를 공부한지 10년만에 고향 인도로 파견되는 인도인 교무 원현장 교무(뉴델리개척)의 출사표다.

1993년 12월 31일 오후6시20분40초,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에 첫발을 내딛던 그 시간을 정확히 기억했다. 인도의 북부 오지 라닥출신으로 남부 뱅글로르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원 교무가 박청수 교무(강남교당)를 만나 한국행을 결심하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 4성계급의 관행이 아직도 남아있던 인도에서 (박 교무 같은) 여자가 이처럼 국제적인 활동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화두를 깨고,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만남’을 위해 20살 때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고,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교구 신림교당에서 2년간의 부교무 생활까지 했다.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아 폐수종이란 병마가 그를 몇 년간 괴롭혔고, 법을 공부하기 위해 필수였던 한문을 익히기 위해 눈물겨운 휴학도 해야만 했으나 그는 이겨냈다. 좌산종법사도 “외국인으로서 어려운 과정을 헤쳐 성공한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고 격려했다.

“공부를 더 못하고, 법을 더 체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어와 힌두어, 한국어를 비롯해 인도의 부족어까지 7개국어를 구사하는 인재다. 그리고 원불교 교무로서 4대 분리신심(교단·법·회상·스승)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게 안민순 교무(신림교당)의 귀띔이다.

그의 본명은 파트마 남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원불교에서 받은 법명이 현장이다. 그 험난한 히말라야 산맥과 열사의 사막을 넘어 부처님의 고향 인도를 순례한 뒤 중국에 널리 불교를 알렸던 현장법사. 원 교무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의지를 갖고 원불교 현장법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오는 16일 그를 인도했던 법모(法母) 박청수 교무와 함께 인도로 떠난다. 10억 인도인에게 대종사님의 새불법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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