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업 면하는 길 있다”  


대종사님은 ‘이미 정한 업(業)은 졸연히 면하기가 어려우나 점진적으로 면해 가는 길이 없지 아니하다’ 하시고 ‘업장은 심력(心力)으로 면하는 길과 위력(威力)으로 면하는 두길’을 밝히셨다. 본장을 몇 차례 나누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심력으로 업장을 면하는 길 여러 가지 중에 하나인 ‘공부하는 사람이 능히 육도 사생의 변화되는 이치를 알아서 악한 업은 짓지 아니하고, 날로 선업을 지은즉 악도는 스스로 멀어지고 선도는 점점 가까와 질 것이다’고 하시었다.

정업을 면하려면 생사 진리와 인과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우주의 진리는 변·불변으로 운행된다. 변화하는 진리를 따라서, 인간은 생노병사로 변화하되 생사길에 여섯 가지 길이 있다. 그것이 육도와 사생의 진·강급의 길이다. 이러한 진리를 알아서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면 정업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도에 들면 인간과 천상 세계의 길로 갈 것이요, 악도에 들면 지옥·축생 등의 길로 갈 것이다.

대종사 당대에 둘째 아들 길주(법명 광령)가 폐결핵으로 요절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이리농림학교에 다니던 고등학생이었다. 조실에서 그 소식을 들으신 대종사님은 대각전에 큰종을 떼어 오라고 하시었다.

죽은 길주 옆에 걸어 놓고 치라고 하시었다. 한참 후에 그치라고 하시더니 육도(六度) 법문을 내리셨다. ‘길주가 지금 죽었지만 어머니 품에 착심으로 붙어서 꼼짝도 않고 있구나. 길주가 학교만 다니느라고 언제 생사진리와 수양 공부를 하였겠느냐? 그러니 어머니에게 착심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착심을 놓지 못하고 보면 어찌되겠느냐? 이 집안에 수태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인도 환생하려니와 그렇지 아니 하면 이 집안 우마축생의 탈을 쓰고 태어 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안에 축생들이 없는 만큼 흔한 쥐로 몸을 받을 수도 있다. 만일에 쥐 가죽을 쓰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부엌을 들락날락하면 자기 새끼인줄도 모르고 막대기로 때려잡을 것 아니냐? 육도의 세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당신의 아들 시신을 놓고 사람이 죽어서 육도로 갈 수 있는 길을 자상하게 일러 주신것이다. 육도의 이치를 알고 강급의 길이 무서운 것인 줄을 알아서,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야만 정업을 면할 수 있다.

‘악업을 놓자’ 그것은 무슨말인가? 탐·진·치 삼독과 오욕·사상 등에 능히 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급등 30계문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에 출입을 하되 물이 들지 아니 하면 제도·천도를 마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우리는 어디에 살 것인가? 악도와 선도중… .

<하섬해상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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