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44년 2기 수위단 중앙단원에 피선된 후 정산종법사와 이공주 중앙단원과 함께.
▲ 원기76년 거행된 대종사탄생백주년 성업봉찬 기념대회 식장에 입장하는 대산종법사.
지난 1998년 9월17일 대산종사는 85세를 일기로 열반한다. 이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한 김준 전 새마을연수원장은 깊은 애도의 정을 토로한다.

“대산종사는 인류의 스승이시오, 저의 진정한 아버님이셨습니다. 저는 저를 낳아주신 아버님과 영적으로 키워주신 대산종사님, 두 분 아버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저희는 대자대비하시고 원만구족하신 스승님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 어른을 뵈옵고 ‘아! 대자대비는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색신은 가셨지만 그 위대하신 사랑과 은혜는 영원히 저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저에게 내려주신 ‘도명덕화(道明德化)’라는 법문을 받들어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조그마한 우주선에(沙工)
대산종사는 1914년 3월16일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부 김인오(金仁?) 모 안경신(安敬信)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11세 소년은 1923년 1월 노덕송옥(盧德頌?) 할머니를 따라 만덕산 초선(初禪) 중에 계신 대종사를 뵙는다. 16세 되던 1929년 3월2일 출가하여 대거라는 법명을 받는다. 1931년 <월말통신> 35호에 그 서원을 다짐하는 ‘立志詩’를 발표했고 1933년엔 전북 임실의 이영훈(李永勳)과 결혼한다.

대종사 문하에 천진 순박한 소자(小子)·소동(小童)이자 소제(小弟)로 업무에 충실하면서 비범하게 수행 정진한 25세의 청년으로 1938년 9월 <회보> 47호에 ‘사공’을 발표한다.

조그마한 우주선에 이 한 몸 태우고서
다북찬 호연대기 노 삼아 저어가니
아마도 방외유객은 나뿐인가 하노라.

이는 성가 111장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

한편 20대 전후의 눈 푸른 청소년으로 득도한 대종사·정산·주산·삼산·고산·숭산종사를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걸출한 선진들 앞에 새삼 옷깃이 여미게 된다.

대산은 일원상의 진리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어 도가에서 참으로 위험천만한, 무서운 관문이라는 중근의 고비를 뛰어 넘기 위해 한사코 적공한다. 대종사 열반 후 폐결핵을 앓는 동지 김서룡을 간호하다가 감염된데다 8·15광복을 맞이한 격변기에 총부 서울출장소장으로 한남동에 머무르며 김구·이승만·조완구·김성수 선생과 만나 민족의 일을 걱정하는 한편 안팎으로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하다 못해 병석에 눕게 된다.

원평·진영·다대포·양주 등지를 전전, 약초를 캐며 홀로 보림 정진하는 가운데 6가지 자문자답의 ‘6문’에 이어 <원상대의(圓相?義)>, <일여선가(一?禪歌)> 등 많은 주옥같은 법문·선시(禪詩)가 우리 새 회상 원각성존(圓覺聖尊) 새 부처님의 비전과 뿌듯한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희소식으로 새삼 크게 세상을 놀라게 한다. 용트림하는 호쾌한 묵향, 설레는 친필 법문과 함께.
원하옵니다. 원하옵니다.
간절히 간절히 원하옵니다.
내 손길 닿는 곳
내 발길 머무는 곳

내 음성 메아리치는 곳
내 마음 향하는 곳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우리 모두 다함께
성불제중 인연이 되어 지이다.
성가 127장. 원하옵니다(心願頌)

나 없으매 큰 나 드러나고
내 집 없으매 천하가 내 집이라.
이것이 참나요 내 집 내 고향
삼세의 모든 성자 모든 부처님
언제나 머무시고 거기 사시네.
성가 138장. 나 없으매

대산종법사의 청사진
1962년 1월 24일 함박눈이 온 산하를 덮은 가운데 정산종사 열반함에 교단의 전폭적인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던 대산종사(48세)가 종법사 위에 오른다. 이로부터 재위 33년 충분한 연륜에 걸쳐 새 회상의 위상을 한국과 세계에 드러내는 청사진을 펼친다.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경륜과 유지를 받들어 7대 교서를 정비 완성하여 I원불교전서 J를 발행한다. 각종 사업회를 발족하여 교단 경제의 기반을 확립하고, 교화·교육·자선·산업·훈련·문화·봉공기관을 설립한다.

반백년 기념성업, 2대말 성업 봉찬사업, 대종사탄생 백주년 기념성업 봉찬사업을 통해 교단의 토대를 반석같이 다진다. 원불교·불교·유교·천도교·가톨릭·기독교 6개종단이 한국종교인협의회를 발족한다. 해외 교화를 활성화하여 세계 속의 원불교로 세계불교도우의회(WBF)·아시아불교도우의회(ABF)·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아시아종교자평화회의(ACRP)에 가입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교단 최초의 상사(上師)
그동안 종법사에 한하여 착용한 현 일원상 법락을 출가 재가 전교도에게 보편화하여 무수 무등등한 대각도인의 출현을 격려하고 신뢰한 대산종사는 1995년 11월6일 원불교 역사상 최초의 대사식에서 그 위를 좌산 이광정 종법사에게 계승한 상사로 영모원의 상사원에서 정양한다. 이에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큰 스승은 1998년 9월15일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라는 게송을 남기고 열반한다.

이 소식을 접한 WCRP 윌리암 벤들리 사무총장은 “대산상사는 원불교의 신념을 힘있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원불교의 진리를 인류에게 가장 깊고 현대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세계 각 종단의 종교적 전통과 교리를 존중하지만, 모든 종교가 배타성을 극복하고 포괄적인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참된 화합을 가르쳐 주십니다. 대산상사의 생애를 깊이 존경하며 원불교의 모든 교도들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라는 애도의 전문을 전해온다.

슬하에 복환, 성은, 성관, 복인 교무와 교도로 활동 중인 복균, 복혜가 있다. 저서로 《I정전대의》, 《교리실천도해》, 《여래장》(이상 원불교출판사)이 주목된다.

1914년 3월 16일 전북 진안 출생
1929년 3월 2일 출가
1931년∼37년 서무, 상조, 공익, 육영, 교무부 서기
1938년∼45년 서무, 교무부장, 총부 교감
1944년 4월 수위단원 피선
1946년 서울 출장소장
1953년 수위단 중앙단원
1962년1월∼94년 11월 종법사 (5대∼10대 종법사 역임)
1998년 9월 15일 열반

김학인 교무 / 원불교 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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