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유혹을 뿌리치고

5, 6살 때 할머니를 따라 뒷마을 조그마한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에는 학교 앞 언덕배기 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열릴 때면 선물 받는 재미로 첫날만 참석했었다. 중학교 때에도 의형제를 맺은 같은 반 친구(현재 서울 모 교회 장로이며 여러개의 교회를 직접 운영하고 있음)의 권유에 못 이겨 몇 차례 교회에 간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엔 같은반 부반장이 학기말 마지막 시험일에 결시하여 그 이유를 물어 본 것이 화근이 되어 다음 학기 내내 교회에 함께 다니자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진정으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인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충정을 저버린다면 참으로 나의 장래가 염려된다고 반 협박조의 말을 하기도 했다.

30대 중반에는 우연히 중학교 의형제였던 김장로님과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그 분은 자수성가하여 큰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해 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의형제 김수규(나의 속명) 아우를 꼭 하나님 앞에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빼 놓지 않았다. 참으로 난감하고 한 편으론 섭섭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했다.

‘내가 원광대 교학과 출신이며 현재 원불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던가?’

불혹의 40대엔 광주에서 큰 서점을 경영하는 ?사장님이라는 분과 수년간 영어교재를 거래하면서 퍽 친하게 지냈다. 그 분 역시 기독교 장로이며 법학과 신학을 전공하셨고 교회의 경제문제를 담당하는 분이셨다.

?장로님은 나를 ‘한국의 간디’라고 칭찬하며 ‘김교수님은 광주같은 시골에서 살 것이 아니라 더욱 크고 넓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실 분이다’고 하며 자기 교회만 나오면 미국의 일류 대학에 원하는 기간만큼 공부 할 수 있도록 물질적 도움을 해 주겠다고 하면서 필요하다면 목사님과 연서로 각서까지 써 주겠다고 유혹했다.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개종하려는 마음은 만분의 일도 없었다.

한국의 간디라는 말은 ?장로님 아니고도 여러분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사실 나는 인도의 간디를 누구보다 존경해 왔고 그 분을 닮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듣기 좋은 말이었다. 원불교에 입문한 후 간디를 닮을 수 있는 길을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속에서 나는 확실히 찾았다. 즉 ‘정의는 죽기로써 실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버린다.’

어찌 나만이 그들에게 인도의 간디로 비추어 지겠는가?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 원불교인들은 모두 다 그들에게는 색다른 인물로 보일 것이다. 대종사님의 법이야 말로 전무후무한 대법이요, 모든 중생을 불보살로 바꾸어 주는 마이다스(Midas)라고 굳게 믿기에 어떤 유혹에도 끌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동광주교당 부회장·동강대 교수>

이번주 부터는 동광주교당 교도부회장이자 광주 동강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제원 교도님께서 신앙수기를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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