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와 생활(5)

여름이 되었다. 아이들은 방학을 하고 어른들은 휴가를 결정할 때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오랜 만에 정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는 계절이다. 일터를 그대로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현실의 고단한 심신을 쉬기를 원한다. 이번에는 휴가를 즐기면서 연마할 수 있는 의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름에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는 계곡에서든 바닷가에서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때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되는데 서로간에 통성명을 하고 직업을 알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되지만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즉 한 사람의 성품 씀씀이는 잘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럴때면 ‘사람의 근본 성품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데 성선설, 성악설과 같은 기존의 이론적 지식을 떠나서 바로 자신의 근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옛 선사들은 이를 본래면목이라 부르고 연구해 볼 것을 권했는데, 본래면목이란 사람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나의 참 모습을 지칭한다.

사람이 어떤 집안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성이 붙고 이름이 지어지고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지만 이는 다 외부에서 한 물건을 분별하기 위한 장치일뿐 본래의 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따라서 본래면목의 연마는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연구하여 내면자증(內面自證)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데, 중국의 한 선사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싸움을 하고 나서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상대편에게 사과하는 말에서 깨쳤다 하니 연구해 볼 일이다.

여름에 야외에 나가 보면 가족들이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는 광경을 흔히 보게 된다.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주로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이 될텐데, 돼지고기는 주로 삼겹살이, 소고기는 불고기 해 먹기 좋은 부위가 선택될 것 같다. 이럴 때면 대종경 변의품 13장의 법문이 생각난다. 쇠고기를 사면서 “깨끗한 부위로 달라”는 손님의 말에 “깨긋한 부위도 없고 더러운 부위도 없다”는 정육점 주인의 대답에 도를 깨쳤다는 그 법문 말이다.

이는 반야심경에서 성품의 공(空)한 모습에는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는 구절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不垢不?)’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 야외에 나가면 비록 진자리 마른자리를 살펴 자리를 잡을 지라도 성품은 불구부정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좋을 듯 싶다.

덧붙여 만일 계곡에 가게 되면 돌이 물소리를 듣는 ‘무무역무무 비비역비비’의 소식과 아울러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의두도 연마해 보기를 권한다. 대종경 성리품 10장의 법문처럼 여러 갈래의 물이 마침내 한 곳으로 모이는 소식이 만법귀일의 소식이기 때문이다.

이 의두에는 성리품 24장의 ‘만법이 본래 완연하여 애당초에 돌아간 바가 없거늘 하나인들 어디로 돌려 보낼 필요가 있겠나이까’하는 대답이 좋은 참고가 된다. 그러나 이 대답에 묶인다면 이는 앵무새처럼 남의 견해를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니 이것과는 차별화된 자신의 대답을 찾아야 한다. 무릇 안목이 열린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견해가 있기 마련인데 그래야만 일가를 이루며 도문의 발전에 이바지 하기 때문이다.

<김도장 교무,경남교구 와룡산 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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