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신성이 최우선

신앙수기를 쓰며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어른님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글을 써 나갔던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지면을 통해서나마 용서를 빌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글을 읽으신 많은 교무님들과 관련 교도님들께서 격려의 말씀을 직접, 간접으로 전해 오신 점이라 하겠다. 내가 다소 거칠게 표현한 신앙인의 자세, 교화의 방향, 교단의 운영 방향 등에 대해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 나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더불어 이 신앙수기를 쓰는 과정에서 나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보은하는 것에 비하여 과분한 은혜를 받아 왔다. 시골에서 자라나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나,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산업연구원의 연수생으로 뽑혀 프랑스로 유학하게 된 것이나, 그리고 프랑스에서 지도교수를 잘 만나 그 분의 이론 형성에 필자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점이나, 그리고 최근에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파견나가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점 등이 아마도 나의 부모님이신 치산님과 방타원님의 公을 위해 私를 버리신 남다른 희생정신을 진리의 세계가 어여삐 여겨 나에게 큰 은혜로서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치산 김치국 정사님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 진리를 향한 열정, 대종사님과 회상에 대한 지극한 신성이 내 마음에 전율처럼 다가온다. 그 어른의 그 자세를 내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지…

이러한 치산님에 대한 생각은 단지 그 분이 나의 생부이셨기 때문이라서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가까이 할 수 있었던 한 분의 선진님으로서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신성을 무엇보다도 강조하던 교단 초기의 인재 양성 체계가 점차적으로 학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여건 때문에 입시시험 위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리라. 그러나 재주와 실력을 중시하면서 회상에 대한 신성을 가진 인재들을 찾아내고 그 선택된 인재들에게 더 깊은 신성을 심어주고 키워주는 데에는 소홀하지는 않는지 하고 반문해 본다. 내가 치산님과 나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지금의 재가?출가교도들의 교단에 대한 신성이 초기 선진님들의 신성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부모님의 인연으로 이 회상을 만나게 되었고 그냥 떠밀려 가듯이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많은 지중한 인연들을 만나면서 법신불 일원상에 대한 신앙과 수행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면서 영생을 통하여 마음공부를 이어나가 반드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것을 다짐해 본다.

<화정교당 교도회장·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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