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상벌은 밝고 두려운 것

‘사람이 주는 상벌은 유심으로 주는지라 아무리 밝다 하여도 틀림이 있으나 천지에서 주는 상벌은 무심으로 주는지라 진리를 따라 호리도 틀림이 없어서….’

왜 사람이 주는 상벌은 불확실 한가? 인식의 한계 즉 정보의 부족 때문이다. 사람은 눈에 확인된 것, 몸으로 체험된 것을 본위로 상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측이나 소문만으로 상벌을 논하다가는 낭패가 따를 수 있다. 효봉스님의 경우다.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나와 한국인으로는 최초 판사가 되신 분이다. 1923년 사형선고를 잘못 내리게 된 회의감으로 입산 수도하여 엿판을 3년간 지고 다닌 일은 유명한 일화다. 사형은 벌이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모두다 정확한 판단일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사람이 주는 상벌은 불공정한가? 희·로·애·락과 증애 그리고 이기주의가 개입되면 상벌은 불공정하게 된다.

증애로 일어난 사회적 혼란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리가 주는 상벌은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선다.

진리는 광대 무량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지의 식(識)이 바로 그것이다.

하늘과 땅은 식이 있다. 천지의 인식 능력과 위력은 밝은 것이며 공정한것이며 소소영영한 것이다.

《대종경》 변의품1장에는 ‘천지의 식은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같지 않은 식이니, 곧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상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가 없는 식이고’ 하였다.

옛날 한동네에 죽마지우가 살았다. 한 친구는 관운이 있어 지금의 도지사 벼슬에 해당되는 직위에 올랐다. 지방을 순회하다가 고향친구가 강가 나룻터에서 사공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자네 한테 한고을 원님(군수)벼슬을 주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사공은 날마다 군수꿈에 젖어 3년간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종종 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도지사 친구가 벼슬을 그만 두게 되어 군수 발령도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룻배에서 졸고있는 사공을 본 지나가던 스님은 사공의 전생사를 보았다.

사공은 모 산사에 화주로 있으면서 절에 비가 새면 고쳐준다, 담을 고쳐준다. 금불사를 한다는 약속을 했으나 실제 이루어진 불사는 단하나도 없었으며 3년만에 죽게되었다. 그가 다시 사공으로 태어나서 결국은 말로만 군수 3년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리의 상벌은 소소 영영하니 사공처럼 헛군수 상을 받지말고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이 주는 상벌은 한계가 있으니 인간의 상벌에 너무 집착 하지 말고, 진리가 주는 상벌을 무섭게 생각하여야 한다.

<·하섬해상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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