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자신의 책임이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생각 때문에 나 자신이 힘들고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사법고시 공부를 10년 넘게 해 오고 있는 동생을 많이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은 내가 CPA공부를 시작한 이듬해에 행시공부를 시작했고, 첫해 시험에 얼마 안되는 점수 차이로 행시에 떨어지자 사법고시로 방향전환을 했고 올해에도 미미한 차이로 낙방하고 말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동생의 시험준비에 경제적 후원자였지만, 동생은 아직도 목표달성을 하지 못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동생이 시험준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언제부턴가 단정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두 차례 동생에게 충고를 하기도 했는데,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하고, 아주 단호하게 말해 버리곤 했다.

그도 자존심이 있는 하나의 부처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동생이 글을 쓰면 사치스럽게 생각하고 진솔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동생이 시사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시험공부하고 그다지 관계없을 텐데, 중요하지 않은 데에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생각했고, 동생이 집안 대소사에 관심을 두면 또는 동생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표현해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오로지 사법시험의 합격이 동생의 목표이고 나 자신의 목표인양. 며칠 전, 동생이 말했다. "누나동생이 시험에 합격하면 동생이고 합격을 못하면 동생이 아니냐고"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너는 구월의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연과 같다고, 그 연이 그 나뭇가지에서만 벗어나면 창공을 자유롭게 날수 있을 텐데, 훨훨 날수 있을 텐데"

무엇이든지 자기보다 잘난 꼴을 보기 싫어서 작은 일에도 에너지를 낭비하다가 보니 정작 자신이 써야 할 사법시험을 위해서는 에너지의 낭비가 생긴거라 생각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내내 동생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나라는 생각, 나의 지식, 나의 존재에 걸려서 동생을 힘들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연은 동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다.

<대구교당,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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