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식 내과 전문의

▲ 양 원장을 찾은 많은 환자들은 그가 마음병까지 치료하는 자상하고 사려깊은 의사라고 이야기 한다.
“저울의 눈금 아시죠? 늘 제자리로 돌아가 제로를 가리키고 있잖아요. 나를 찾는 모든 환자들에게 항상 ‘제로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처음마음, 평상심 말입니다. 1백명의 환자를 진료한다면 1백번 본래마음이 되어야지요 "

의사의 평상심이라! 환자에 대한 배려와 정성을 강조하는 내과 전문의 양형식 원장(법명 관중, 양형식 내과 원장, 전북교구 교의회 부의장, 전주교당 부회장).

올해로 병원 개업 15년째를 맞는 양 원장은 전주에서는 손꼽히는 소화기 내시경 전문의다.

“의사는 당연한 내 운명의 길”이었다는 양 원장은 어린시절부터 장래 희망은 언제나 의사였고, 의사이외의 다른 길은 한번도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의대시절 줄곧 톱을 놓치지 않았던 양 원장이 모두들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내과를 선택한 것도 의사로서의 자존감 때문이었다.

전북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군의관을 제대한 후 1986년 개업,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학병원 연수,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대로 탄탄대로 행운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많은가 보다며 웃는 양 원장에겐 남다른 생활철학과 표준이 있었기에 현재의 모습을 가꿔낼 수 었었던 것.

균형과 조화, 인화와 배려가 남다른 생활 철학

그 첫째는 균형과 조화이다. 어떤 작은 부분보다는 전체의 균형과 조화로움을 충실하게 지켜 나가는 원칙이 그것.

그리고 인화와 배려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양 원장의 주위에는 늘 사람이 있고, 은혜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의 도반들이 있다. 그가 스스로 장점으로 꼽는 친화력도 쉽게 양보하고, 한발 물러서는 배려에서 생긴 노하우다.

그에겐 의사로서의 목표가 있다. ‘일생동안 나로 인해 생명을 구한 사람이 10명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많은 환자들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꼭 내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환자가 나로 인해 생명을 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런 그의 의지와 신념은 현재 2명의 환자를 죽음에서 건져 냈다.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한분은 다른 의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암세포를 초기에 발견해 건강하게 살고 계신 분이지요. 지금은 건강문제라면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나와 상의합니다. 믿음이 있는거죠. 또 한 경우는 초기 위암 환자라 조직검사를 했는데, 암세포가 있는 그 부분의 조직을 떼어내게 되어 전이를 막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죠”

하지만 절망스런 경우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한 동료의사가 병을 예견하고 양 원장에게 진단을 맡겼을 때, 내시경 검사로 암세포를 발견했던 충격, 절망감에 휩싸였던 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의사를 내놓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한다.

“무엇보다 내가 의사이기에 누렸던 가장 큰 행복은 대산종사님 임종당시 끝까지 곁에서 간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재세시 어려운 고비마다 힘이 되어 드린 것도 내게는 의사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최대의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양 원장은 최근 의료계의 사건들로 인해 환자와 의사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며, 환자의 마음도 예전같지 않다고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의사들이 마치 돈을 밝히고, 명예를 탐한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의사는 환자의 신뢰를 먹고 삽니다. 사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믿음은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의료계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양 원장을 찾는 많은 환자들중에는 그가 마음의 병까지도 치료하는 자상하고 사려깊은 의사라는 점을 크게 꼽는다.

“내과를 찾는 상당수의 환자들은 마음의 위로와 함께 건강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합니다. 의학적 판단과 함께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와 병과 치료와 건강을 사이에 두고 늘 철학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좋은 의사로서의 면면 뒤에는 아버지(양공신 진북교당) 어머니(명타원 최명일 진북교당)의 깊은 신앙생활과 양보하고 희생하는 아내(송덕이 전주교당)의 알뜰한 내조가 늘 함께 했다.

대학생인 큰 아들(원제)과 의사를 지망하는 둘째 아들(정원)도 양 원장에게는 큰 희망이고 보물이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양 원장의 고집스런 교육관이 소중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성공한 셈.

전주교당 연화촌 출신인 그는 전국학생연합회장, 중앙청년회 부회장, 청년교리 대회 1등, 원청30주년대회 사회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청소년, 청년시절 원불교 신앙으로 교단의 굵직굵직한 역할들을 해냈던 저력이 오늘날 의사로서, 지역사회의 봉사자로서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바탕이 되었던 것일까.

각 분야의 활동과 함께 특히 10여년간 라디오 의학상담을 해온것만 봐도 의사로서의 열정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JTV 시사토론 명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최근에는 병원 이전을 앞두고 있어 더욱 바쁘다.

10여년의 라디오 의학상담, TV토론 사회자로 왕성한 활동

“생활하면서 대종사님의 말씀이 늘 마음에 있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에 시달릴 때, 사회적인 명예가 앞설때면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이래서는 안되지’라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이 야속할때도 있습니다.(웃음) 서원과 신심은 깊게 자리하고 있죠”

환자들을 만날때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로, 자신을 만날때는 초발심의 신앙인으로, 가족을 만날때는 다정한 남편과 아버지로 다양한 세계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양형식 원장. 그에게서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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