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 지원 할 수 있어 보람 느낍니다”

70년 전통 보화당의 축

이리보화당은 원래 이름보다 구보화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거기에는 구시장에 자리잡은 탓도 있고 역전보화당, 전주보화당, 원광제약사 등을 개원시킨 원조라는 뜻도 담겨있다.

올해 70년을 맞는 이리보화당한의원을 지키는 김학종 교무. 물리치료실에서 침을 놓는 그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서 느낄수 있는 신뢰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물리치료실은 전담 한의사가 있지만 가끔 침을 놓지요. 저는 주로 약제 진료를 합니다.”고 말한다.

보화당은 예로부터 보약으로 유명하다. 김 교무는 “원불교에서 하니까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고 말하지만 이중훈 교무는 “김 교무의 실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교화

사실 그동안 교단에서 많은 한의사를 배출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환속한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런 고비가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를 지켜준 것은 출가정신이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원광대 원불교학과 기숙사에 입사해 교학과생들과 함께 밭일하고 염불좌선하며 교육받은 힘이 그를 지탱하게 했다고 한다.

“몸으로 배웠죠. 함께 일하고 법설 익히고 사감님께 배운 교리가 저에게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지금도 교리연마를 놓지 않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뜻밖에 그는 지금도 교화자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들었다. 교무는 제도사업을 할 때 가장 교무답다는 것이다. 굳이 등수를 매기자면 자기같이 산업계에 근무하는 사람은 3등 전무출신이라고 생각한단다.

“제가 하는 일이 가치 없어서가 아니라 교화사업을 그만큼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교화사업 하는 교무가 산업계에 있는 교무보다 명예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지원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교단이 전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현실이 못내 아쉽다고도 했다.

끊임없는 공부로 올해 박사학위

그렇다고 그는 자기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 그는 보화당에서 얻은 수익으로 교화지원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단다. 말 그대로 영육쌍전의 실천장이다.

한의사란 직업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보니 잠시도 공부를 쉴 수가 없다. 진료하고, 공부하는 단순한 일과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그는 올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적인 명예를 위해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리보화당 운영 책임자로서 보화당의 명예를 위해 받았다고 한다.

“한의학 공부와 교리공부 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방학 때마다 신도안에 가서 대산종법사님 모시고 공부한 덕택입니다. 학창시절 상으로 공책 1권하고 ‘일심합력’이란 법문을 받았어요”라고 회고한다.

영등보화당한의원 개원

이리보화당은 7년전 영등동에 부지를 매입해 새 건물을 신축하고, 올1월 영등보화당한의원을 개원했다. 구시장 상권이 쇠퇴하는 것에 대비한 포석이었다. 한의원도 많이 생겨 예전같지 않다. 직원들도 자연 10여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오랜 단골손님이 많아 운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한의원 벽에 걸린 이재철-이동안-송혜환-조희석 등 역대 사장들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70년의 전통이 빛 바랜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있었고, 그 전통은 오늘도 김 교무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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