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 누비며 평화와 은혜 베풀어

▲ 캄보디아 지뢰피해 환자를 돌보며.
▲ 세계 52개국을 돕기위해 박청수 교무가 손수 적은 가계부.
연초 좌산종법사는 인류에게 ‘평화를 생산하자’는 법문을 내렸다. 평화는 인류의 화합을 위한 근원적인 열쇠이기 때문이다. 대각개교절을 맞아 원불교신문사는 평화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교단 인물로 박청수 교무를 선정하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사실 박청수 교무는 ‘평화’에 관한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박청수 교무는 성직자로서 한평생 소외된 사람을 위하고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온누리에 은혜 베품을 실천해 왔다. 박 교무의 활동상은 언론과 방송을 통해 너무 자세하게 알려졌다. 과연 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5년전, 박 교무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다 39세의 나이로 순교한 은혜의집 故 길광호 교무의 마지막 7개월을 강남교당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거두었다. ‘힘들게 살았지만 거룩했던 그 삶’을 지키줘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후진들이 줄을 잇게 된다는 자비 어린 철학 때문이었다.

기자가 박청수 교무를 다시 만난 것은 그 때로부터 정확히 5년만이었다. 박 교무와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기자는 밥을 씩씩하게 먹지 못했다. 나물을 덜어주는 박 교무의 손이 미세함을 넘어 많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년을 2년 앞두고 당뇨가 더욱 심해져 손가락들이 많이 저린다고 했다. 평생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성직자의 의무이자 아름다운 덕목이지만 노쇠해가는 성스러운 육신을 흐릿해진 눈망울로 보며 기자는 만남을 시작했다.

전 세계 소외된 사람들의 어머니

전주여고를 졸업한 직후 원기41년(1956) 출가서원을 세운 이후 박청수 교무의 삶은 온통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박 교무는 시각장애인과 나환자·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일에서 출발하여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를 위한 탁아사업, 소년원 출소자의 사회적응을 위한 일 등에 힘쓰다가 이제는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두 개의 대안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박 교무의 활동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지뢰제거와 구제병원 설립, 히말라야 오지 라닥에 병원·학교·양로원 설립, 아프리카 돕기, 세계 각국의 긴급구난 등 지구촌 52개국을 대상으로 빈곤·무지·질병의 퇴치에 힘썼다.

한민족의 핏줄을 나눴으나 고통받고 있는 민족을 위한 은혜나눔도 박 교무의 빼놓을 수 없는 치적이다. 1995년 큰물 피해로부터 시작된 북한동포돕기, 연변자치주의 조선족을 위한 교육사업, 중앙아시아에서 다시금 극동으로 이주하며 극빈의 삶을 영위하는 고려인 돕기 등이 그것이다.

강한 신앙과 교법실천이 원동력

“신문이나 방송 혹은 지인을 통해 이웃의 어려운 소식을 들으면 체증이 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잠이 오질 않습니다.”

박 교무의 삶을 이해 할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실제로 박 교무는 도울 일이 생기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법신불 사은전에 꿇어앉아 진리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온통 신앙에 기대는 것이다. 실제로 며칠째 끙끙 앓는 것은 진리에 대한 ‘어린장’인지 모른다. 때때로 강남교당의 법회 심고는 박 교무의 즉석 설명기도로 20∼30분이 걸려 설교보다 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박 교무의 진심어린 기도에 몰입되다보면 시간이 느껴지지 않고 함께 눈물도 흘리게 된다.

그리고 박 교무와 강남교당은 가난(?)하다. 교당 통장에 모인게 없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뭔가 들어오면 베풀기 때문이다. 쌓일 틈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 교무의 몸빼와 블라우스는 강남교당에서 기십년 박 교무를 감쌌고, 솔직한 취재를 위해 기별없이 찾은 박 교무의 방문이 열리자 구멍난 런닝과 스타킹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쯤되면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소망을 들어줘야 할 바쁘신 신(진리)께서 누구의 소원을 들어줄까?

박 교무는 평범한 여성에 불과하지만 이같은 ‘강한 신앙심’과 청빈을 즐기는 ‘교법실천’을 원동력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리며 세계사업을 해가고 있다.

‘어서 오라’하며 미소짓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자리잡은 강남교당은 이같은 박 교무의 삶과 역사를 증명하는 터전이다. 전 교도가 일심단결하여 박 교무의 ‘철학이 담긴’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모은 옷을 콘테이너에 싣는 등 한가지 사업이 시작될 때마다 강남교당은 발 디딜 틈이 없는 벼룩시장으로 변한다. 한가로움과 성스러움이 묻어나야 할 곳이 성소(聖所)이지만 이같은 이유로 자그마한 강남교당은 그 자체로 강한 성스러움이 어려있다.

박 교무의 활동을 보면 보좌에 지쳐 강남교당을 떠나고 싶은 교도가 많을 거라는 ‘도발적’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 인도에 보낼 옷가지를 포장할 때 만난 한 교도는 이렇게 말했다.

“골프치고 동창회 갈 시간에 교무님은 함께 나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죠.”

이 말은 역시 나의 사유를 도발에 그치게 했다. 실제로 강남교당의 예회 입등자는 130명에 이른다.

박 교무의 일이 워낙 많다보니 언론에서 그 활동상을 빈번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다보니 두 가지의 상황이 함께 나타났다. 하나는 박 교무를 돕는 사람이 교단 내외를 가리지 않고 늘어났다는 것이다. 재송·신림·개포·영등포 등 교당교무들이 10∼20만원씩 받는 그 작은 용금을 쪼개 개인적으로 꾸준한 지원금을 보내고, 한지성 원불교여성회장도 경기여고50회동창생을 중심으로 매월1백만원씩 13년을 후원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사단법인 청수나눔실천회가 구성되어 공식적인 박청수 교무 후원체가 생겼다. 빈자일등부터 기수급고독원 보시까지 박청수 대열에 후원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너무 잦은 보도에 무감각과 시기하는 무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언론은 어차피 일하는 사람을 조명하게 마련인데 워낙 일을 많이 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영문책자를 비롯해 비디오 홍보물과 보도자료 등은 후원자를 늘리기 위함인데 이것 역시 오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 교무는 ‘하늘을 상대로 뜻을 펴’며 함께 하는 모든 이를 진급시키며 ‘어서 오라’한다.

교화는 ‘구체적 도움’

“평화는 곧 원불교의 세계화와 다름이 아닙니다. 교세의 확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법을 세계속에 얼마만큼 실현하는가 라는 말입니다. 교리가 좋고 월등하다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교화란 설법이 아니라 세계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때라는 것이다. ‘구체적 도움’이 있을 때 사람들은 고맙고 좋은 것을 느낀다는 말이었다. 박 교무는 확실하게 실천 중심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소외받는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결국 차세대 인류를 위한 나눔과 베품이라고 덧붙였다. 미래 인류에 대한 교훈이라는 것이다.

성직자에게 교단 내외가 따로 없지만 결국 교화를 위한 고민이 이같은 결과를 내 놓았다. 북한동포를 위한 일도 원불교평양교구장으로서의 고민이 이어진 결과였고, 육군사관학교 출장법회가 오늘날 군종교화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성나자로마을을 비롯해 2억원이 넘는 돈을 이웃종교의 일에 쾌척해 ‘모든 종교가 구경에는 하나로 만난다’는 성자들의 말씀을 실현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했느냐고 직설적인 우문을 던졌다.

박 교무는 “하나씩 놓고 보세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라고 말하며 또 이었다. “지금의 결과물은 ‘원불교의 얼굴이 무엇일까?’를 화두삼은 결과예요. 내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지요. 비누 한장, 타올 한장이라도 제게는 소중한 도움이 되는데 사람들은 약소하다고 말아버립니다. 그러나 작은 응함을 대할 때면 정말 소중한 동지애를 느껴요.”

누군가 이 일을 이어가야 하지 않느냐고 또 물었다.

배시시 웃으며 “정신만 살아있으면 다 이어져요”라고 말했다. 천청수 만청수는 박 교무의 그 정신을 이어받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말이다.

정년이 희망이라며 이제 퇴임하면 평생 본 일 없는 연속극도 볼 참이란다. 박청수 교무는 지구촌과 교단에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