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식 속에
일제의 나쁜 찌꺼기를
씻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박영학 교무

3월 초부터 일본 교과서의 한국 침략 관련 기사가 심히 왜곡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일본의 관련 부서 통과 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대통령이 삼일절 기념사에서 우회적으로 유감 표시를 했고 국회에서도 항의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교과서를 만든 일본의 우익 국가주의 단체인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일본 문부성의 검인정 통과를 자신하는 모양이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펴는 이 교과서 반대 발언을 입막음하기 위해 테러 행위도 불사하겠다는 엄포를 늘어놓는다고 한다.

나는 이번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관련하는 한겨레신문의 ‘여론 나침반’이라는 고정 컬럼을 읽고 또 읽었다. “일본 교과서 왜곡과 산케이신문”이라는 기명 기사는 일본의 극우 단체의 이념을 충실히 대변하는 배후 신문으로 산케이신문을 들었다.

일제의 조선 강점을 한국 근대화의 촉진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산케이신문은 199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했다며 분통을 터트린 신문이라고 한겨레신문은 소개했다. 그리고 그런 일본 우익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사람이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라고 한겨레 컬럼은 밝혔다. 구로다 기자는 지난해 부산의 영도다리 철거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우리 나라 한 잡지가 “일제의 학정과 전쟁 비극을 지켜본 영도다리”라는 표현을 꼬집어 “일제하의 근대화"가 바른 표현이라고 억지를 부렸는 것이다. 그의 99년도 판 저서 『한국인의 역사관』에서도 그는 “당시 일본군과 위안부의 관계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였을 것”이라는 해괴한 논지를 폈다고 한다.

최근 일본 실습선과 미국 잠수함 충돌 사건에 대해 일본인은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주문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일본인 그세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이런 일본의 태도를 “진정한 사과를 모르는 일본”이라고 썼다.

이런 일본의 극우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산케이신문의 보도 내용을 우리 나라 신문 가운데 스스로 민족지라고 자부하는, 일제하에 친일전력이 있는 국내 신문이 자주 인용한다는 점에 한겨레신문의 칼럼은 주목하였다. 스스로 유력 일간지이며 민족지를 자임하는 한국의 이 신문이 산케이신문을 빈번히 인용하는 속뜻을 나는 헤아릴 능력이 없다. 다만 한겨레신문 칼럼의 끝맺음을 소개하고 싶다.

“반공과 반북에서 죽이 맞으면 일제 미화 신문과도 손잡는다는 것인지 씁쓸한 일이다” 해방 오십 년이 지난 지금껏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일제의 나쁜 찌꺼기를 씻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보충했던 덴마크 재건의 기수 구른트비히의 외침이 삼일절 만세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웬일인까. 우리는 너무 오랜 동안 남의 탓만 하면서 허송한 것은 아닐까.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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