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력이 의식주 해결의 근본

동양난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얼마 후 싱싱하던 난이 시들해졌다. 물도 주고, 영양분도 주었건만, 시들해지긴 마찬가지다.

할 수 없어 뽑아보니 뿌리가 썩어 있지 않는가. 다시 썩은 뿌리를 잘라내고 정성을 드리니 잎이 싱싱해지고 꽃도 피었다.

법어 무본편 9장에 보면 “무엇이나 근본에 힘써야 끝이 잘 다스려지나니, 육근의 근본은 마음”이라 하셨고 무본편 4장에서 “일상생활의 체를 잡는 데에는 정신을 근본삼아 수양, 연구, 취사로써 의·식·주를 구해야한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드릴 교의품 19장에서도 “정신의 삼대력, 즉 일심·알음알이·실행이 육신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얻는 근본이 된다.”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우선 먹고, 입고, 처할 집이 없다면 생활에 많은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생활에 보다 더 편리한 의·식·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어주는 근본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그러나 의·식·주를 나오게 하는 원리는 찾지 않고 있으니 대종사는 실로 답답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원기20년 발행된 <회보> 5호 법설에 “일심, 즉 온전한 마음을 들이대어야 길을 가고, 일을 하고, 말을 듣는 것도 잘된다. 알음알이가 있어야 시비이해의 구별과 인간의 생사고락을 알게 된다. 실행이 있어야 일심과 알음알이가 효과를 낸다.”고 하였다.

육신의 의·식·주 해결은 육근동작을 해야 하고, 육근동작에 실수가 없으려면 육근동작을 운전하는 마음의 세 가지 힘! 삼대력을 갖추어야 한다.

돈도 마음이 들어서 번다. 시체가 육신의 의·식·주 해결은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패션디자이너가 옷을 만들 때 ‘어떻게 옷을 만들면 아름답고 실용적이고 가격경쟁력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이것도 분명 정신의 삼강령이 근본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전철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 누가 내발을 움직이는가? 내 마음이 머리에 명령을 해서 내 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생활을 빛내기 위해 과연 우리는 정신의 삼강령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우리 다함께 근본을 다스려야 모든 일에 성공이 있음을 알아 근본에 힘을 쓰자. 육신생활에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의·식·주. 이를 구하는 원리는 정신의 세 가지 힘! 삼대력을 기르는데 힘을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식·주를 도로써 구하고 생사 해탈과 인과 이치까지 알아 영원한 세상에 지혜와 복락의 주인공이 되자.

이명륜 교무·중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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