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에 맞추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우리 아이들은 매번 뒤늦은 걸음을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현재의 생활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는 늘 있는 법이다.

우리 학생들은 흙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는 일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늦은 봄 텃밭가꾸기 시간에 고추 모종을 심었다. 고추 모종을 하기에는 아직 고추 모종이 덜 자라 있었고 시기적으로도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다들 고추가 잘 자라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고, 아이들이 농부가 아닌 이상에는 처음 심는 고추가 혼자서 중심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던가? 비오는 날이면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고추 밭에서 풀을 뽑느라 온 몸을 흠뻑 적시곤 했던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 이선생님의 끊임없는 정성과 노력이 있었다.

학생부장은 고추 모종이 잘 자라라고 아침나절이면 노래를 한 소절씩 불러 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나는 고추밭을 기웃거리며 어설픈 고추 모종이 잘 자라고 있는지 돌보았다. 천지자연의 힘이 학생들에게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두 손 모아 비는 마음으로 말이다.

6월 중순경이 되자, 우리 식탁에는 아이들만큼이나 싱싱하고 푸릇푸릇한 무공해 고추가 풍성하게 장식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서로 믿을 수 없어 했다. 요즘 먹는 김치는 우리가 농사지은 고추로 담근 김치라서 그 맛이 일품이다.

올해 김장은 우리가 심은 배추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배추와 무를 고추밭 한 켠에 친구 삼아 심어 두었다.

밭에는 채소를, 화단에는 꽃을 심고 가꾸며 우리 학생들은 기다리는 공부를 한다. 모든 것에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과 정성을 들인 만큼의 결과가 있음도 배운다. 왜곡되고 인위적인 몸짓으로만 소통하는데 길들여진 학생들을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과 귀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고추 모종이 자라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우리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고 침을 뱉지만 학교를 좋아한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이다. 오직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 아이들의 내면에는 행복과 웃음이 자라고 있는 중이다. 고추 모종을 심고 정성으로 가꾼 텃밭에 빨갛게 고추가 익어가듯이 우리 학생들은 바로 이곳 헌산에서 청소년기의 튼실한 열매를 알알이 맺어가고 있다.

<정명선 교무 헌산중학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