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 한 잎 두 잎 한들거리던 9월초 성주 삼동연수원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길도훈 교무가 “교단의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여건상 현직에 있는 분들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우리 세대가 희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기자는 순간 “노!”라고 했다. 그 말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고 “뭐 한게 있다고, 언제 제 뜻대로 일할 기회도 없었는데 희생이라니! 그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러니까 희생이라고 했지’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길 교무가 총단회 자유발언 시간에 칼을 빼들었다. “한 해에 30∼40대 젊은교무 4,5명이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어느 조직이든 정체기가 있다. 이를 행정학에서는 '레드테잎'이라 한다. 이 때는 조직의 발전보다는 발전과정에서 생긴 자체내의 문제 해결에 급급해지게 된다.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쇠퇴하게 되고 잘 넘기면 새로운 성장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렇다고 도가에서 인위적인 물갈이를 할 수는 없다. 어느 한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신문사에서 정년 연장에 관한 전화설문을 했을 때 어느 선진은 “후진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경험을 쌓지 못해서 걱정이다. 이것은 교화에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우린 그래도 30년 이상 교화했는데…” 하셨다.

이제 연공서열을 따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후진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풍토를 만들어가자. 후진들도 그런 선진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우대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가자.

교구에서 젊은 교무에게 길을 터준 선진이 무능한 분이 아니라 대의를 알고 진정으로 교단을 걱정하는 선진으로 받들어 드리자. 후진은 그런 선진에게 정신적인 지도를 받아 함께 교화하며 봉양의 도를 다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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