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인연과 입교

나는 입교한 뒤 참여한 일들이 보람있는 결실로 그리고 초창의 역사로 시작된 것이 많이 있다. 우연이 아니고 스승님과 동지들의 호념 속에 숙세의 지중한 인연임을 감사하면서 서원으로 일관한 신앙수기를 적어 본다.

나는 절에 다니는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 덕으로 6남매의 막내이자 독자로 출생했다. 본래 종교는 불교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교육열에 의해 고향인 진안군 백운면에서 초등학교 시절 전주로 전학을 한 덕택으로 원불교와 일찍 인연이 되었다.

초등학교때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가 크리스마스 행사나 방학때 어린이학교에 참여한 기억도 있으나 일시적일 뿐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 3학년 당시 고입시험을 앞두고 진로 결정에 고민하고 있는 때 봄 기운이 완연하고 꽃이 필려고 하는 4월, 우연히 원불교 전주지부(지금의 교동교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주지부 가는 길은 좁고 길고 어두운 골목으로, 지나는 사람이 적은지라 두렵기도 했다. 그러던 차 많은 사람이 모여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호기심에 발길을 들여 놓았는데 이것이 나의 인생 여정을 바꾸게 된 인연이 되었다.

입구를 자갈로 조성하여, 소리날까봐 조용히 걸어 법당에 도착하니 빈틈없이 꽉 메운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뒤에 서서 들었다. 여자강사(구타원 종사님)가 「인지미덕」이라는 법문을 어찌나 재미있게 하던지 떠날 생각을 잊고 계속 듣고 서 있는데 맨뒤에 계신 아주머니 한분이 『학생 이리 앉아서 들으라』고 권유하면서 자애로운 어머님 같이 보살펴줘 앉아서 끝날때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이것이 두번째 우연이다. 그분이 지금은 타계하신 유해일님(미주서부교구 김혜봉 교구장 모친)으로 그분의 권유가 아니었으면 잠깐 듣고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하니 늘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런데 내가 성장해서 원불교를 열심히 다닌 것을 보람으로 알고 인생의 반려자인 노성님을 중매까지 하여 주셨으니 나에게는 큰 은인으로 잊을 수 없는 어른이시다.

『내일도 계속 되니까 나오라』는 말씀에 3일간 빠지지 않고 나갔고, 『학생회가 있으니 나오라』고 까지 하여 전주교당 학생회에도 출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또 같이 동행하는 도반이 없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다가 한번씩 참석하는 관계로 누군가 입교를 권유치 않아서 입교 자체를 모르고 몇년을 보냈는데 대학시험에 합격하고 교당에 갔을 때 당시 전주양노원에 근무하신 은산 오성수 교무님께 인사 드리면서 『법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비로소 입교원서를 제출했다. 법명을 받은 날이 원기46년 3월 26일이다. 생각하면 나의 입교는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 「하마트면」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우연한 인연에 우연한 입교였다. 나는 그후로 주위 분들을 교당에 안내할 경우 입교부터 절차를 밟아놓고 다음일을 권유하는 원칙이 섰고, 교무님들에게도 그렇게 하시라고 나의 예를 설명드린다. 그리하여 오성수 교무님의 연원으로 입교한 후 오늘까지 한번 뒤돌아 볼 생각없이 신앙생활을 하였다. 청년회 대학생회 청운회 등등 손발길이 미치는 곳이면, 마음이 있는 일은 서원 하나로 일관된 신념으로 교단의 이곳 저곳 폭넓게 참여 하였다. 내가 성장할 때만 해도 초창이라서 하였던 일들이 초창의 역사로 그리고 시작으로 기록된 사업들도 많음을 보람으로 생각하면서 이후에 글을 써 나가겠다.

〈호적명 평수, 중앙청운회장, 화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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