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의 요법에서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라는 귀절에 의심이 걸려서 출가후 오랫동안 이를 화두로 삼고 연마해 왔었다. 마음의 요란함이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면, 대종사님께서는 왜 그 해결을 위해서 자성을 세우자고 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경계가 원인이라면 경계를 문제삼고 이를 극복하게 한다든지, 피경을 하도록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계는 전혀 말하지 않고 바로 자성을 세우자고 하셨다.

원시불교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마음의 어두움(無明)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길가에 떨어져있는 새끼줄을 뱀으로 잘못 생각, 두려움에 떨며 도망을 갔다고 한다. 만약 그가 마음이 밝아서 새끼줄을 있는 그대로 보았거나, 아니면 이를 비단끈으로 보았다면 어두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소중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점이다. 이는 마음공부에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마음이 일어남이 경계에 원인이 있지 않고, 경계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괴롭혔다고 생각한 크고 작은 경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나, 상황 그 자체가 나를 고통주고 상처를 준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산종사께서는 「경계를 따라 한생각 밝은 마음과 한생각 좋은 마음이 일어나게 하라」(무본편 47)고 하셨다. 마음이 요란하고 괴로웠던 것은 단지 경계에 대한 나의 생각때문이지 경계 그 자체가 아니다. 이를 확실히 받아들이면 묶인 오랏줄이 한 순간 풀려나가는 것과 같은 해방감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짓눌리게 한 일체의 어두운 과거가 시원하게 정리된다. 나의 생각 하나로 묵은 업장이 깨끗하게 녹아날 것이다. 참으로 통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나를 괴롭힌 사람을 원수로 생각할 수도 있고 스승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생각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원수로 보면 그로부터 늘 고통을 느낄 것이고, 스승으로 보면 그를 통해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 하나 차이로 전혀 다른 삶을 수용하게 된다.

마음공부는 일어나는 마음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실제의 문제를 눈앞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누구나 마음공부의 결실이 확연히 나타나서 공부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이제 「경계를 따라」는 「경계에 대한 나의 생각에 따라」라는 뜻이 숨겨져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요란함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은 경계가 아니고, 경계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교정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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