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종 교무 /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어느 종교학자는 우리 나라의 종교를 진단하는 가운데 원불교는 이제 창립기를 지나서 제도 정착기에 접어들었다고 평한 적이 있다. 이러한 평가에 쉽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도 교단은 개교 100년이 되지 않는 역사를 통해서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 교단은 교헌 개정을 통해서 세계적 보편 종교로 성장하기 위한 제도의 기본적인 방향을 정하였고 이에 관계되는 각종 교규와 교령의 개정작업을 거의 완료하였다. 교단에는 이러한 성문법에 의한 제도화 뿐만 아니라 문화와 전통에 의해서 강력하게 제도화 되어 가는 요소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우리의 각종 의례나 재가출가 교도의 종교적 생활 문화는 성문법 이상의 강력한 규범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제도화의 과정은 교단의 발전과 더불어 개교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매우 고무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본질적으로 보수성향을 갖게 되고 그 가운데에서도 종교의 제도는 더더욱 보수적 경향이 강한 특성을 갖는다. 우리 교단에서도 하나의 제도가 성문화되어 시행이 되다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에는 그것이 청산되지 못하고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제도란 오래되면 그 이념과 목적에 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형식주의에 떨어지기 쉬운데, 종교 제도는 더욱 형식주의에 떨어지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수성이 강한 종교의 제도는 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제도를 낳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가 하면 종교를 본래의 개교이념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게 하고 심하면 목적가치와 수단가치가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보수성이 강한 제도는 자체적인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경직되는 한편 이러한 제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결국은 붕괴의 과정을 맞게 된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경험한 종교개혁 운동이나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분종이나 분파 현상은 그 종교의 이념이나 교리적인 차이보다는 제도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개교 이념과 교리 아래서도 서로 다른 제도에 의한 종교의 성립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임을 반증한다.

제도란 이처럼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에 있어서도 제도는 지극히 비본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제도는 문화적 환경의 결과로 나타난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 환경이 변함에 따라서 적절한 개혁과 변화를 수반하는 유연성이야말로 제도의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제도가 목적인 것처럼 제도 그 자체를 절대시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대종사님께서는 과거 종교의 잘못된 제도로 인해서 변질되고 퇴색되어버린 종교의 본질을 되살려 돌아오는 참 문명시대를 이끌어 갈 새 종교의 문을 여시었다.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새 회상을 창건하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오늘의 편리함을 위해서 아무런 각성 없이 과거 종교들의 제도를 모방한다면, 그것은 우리 회상의 개교정신에 반하는 중대한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창조적 방향을 모색하는 제도화과정에는 오늘의 편리함보다는 상당한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개혁정신의 긴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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