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성  
 
4월 21일, 성지고 가족 모두는 아침에 일어나자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입니다. 이날은 전 가족 봄맞이 체육대회를 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청군과 백군으로 패를 나누었고, 단체복 윗도리도 맞추어 체육대회 분위기가 바야흐로 무르익었는데, 마침 비를 뿌려 하늘이 무심한 듯 하였죠. 봄비가 메마른 땅을 적셔주니 또한 고마워 하늘 탓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 동안 우리 학교의 여러가지 학생 활동 때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날씨만은 도와주었기에 저희들은 다소 어리둥절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방심했나? 반성까지 하며 올려다 본 하늘은 안개가 자욱하고 구름은 두터워 쉽사리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았죠.

아이들은 비가 와도 체육대회를 하자고 아우성이었지만 체온이 떨어져 감기 환자가 무더기로 생길까봐 우선 수업을 하다가 비가 그칠 성싶으면 바로 대회를 갖기로 하였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치고 있었죠. 그래서 이제 비가 좀더 오더라도 체육대회를 강행하기로 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모자와 덮개옷과 세수 수건 따위를 준비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운동장에 아이들이 모여드는데, 이건 거의 파닥거리는 날생선 같이 살아나는 겁니다. 덩달아 마음이 흥겨워, 비 그쳐 가는 날씨 속에서 참 신나게 놀았죠. 발야구를 변형시킨 속칭 ‘개떼 발야구’와 공 세 개로 하는 ‘개떼 축구’, 그리고 릴레이까지, 온몸이 땀으로 신명으로 흠씬 젖었습니다. 정말이지 최근 기억으로 이렇게 재미나고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비가 온다고 한숨을 쉬었지만, 땅이 촉촉해져서 먼지가 전혀 나지 않아 좋았고, 끼어 있는 구름은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어 또한 좋았으니, 이번 행사에도 어김없이 날씨가 은혜를 내려주시는구나 하고 입을 모았죠.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은혜 아닌 것이 없고, 궁극에까지 해로운 것이 또한 어디 있겠습니까?

마냥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몸 부대끼면서 껴안고 사는 온갖 마음의 앙금들을 ‘개떼 발야구’ 한 판으로 다 씻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행사 때마다 하늘이 도와주시는 것을 보면 그렇게 살라는 뜻이 아닐런지요.

그리고 요즘 우리 학교에서는 연극 배우 이주실 선생님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연극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주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을 각별히 아껴주시어, 마침내 아이들을 무대로 모으는데 성공하여, 5월 13일에 영광의 한전문화회관에서 첫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또한 소중한 은혜이니, 영산 성지에 가득 찬 봄기운같이 맑고 밝고 훈훈합니다.

〈호적명 일관, 영산성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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