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규 교무
몇일 전 부교무 훈련에서 종법사님의 훈증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도 그러하셨지만 당신의 무릎 가까이 부직자들을 앉히시며 현장에서 지친 우리의 심신을 하나 하나 헤아려 주시는 자애로운 성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오후 화동한마당 시간에는 직접 축구를 함께 하시며 너와 나는 물론 선진과 후진, 스승과 제자의 간격을 온통 훈훈한 기운으로 물들게 하셨다. 이 모습을 보면서 ‘지친 마음을 살려내 주시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시는 저 모습이 구전심수의 교화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교화를 해왔던가를 살펴보았다.

첫째 먼저 자기교화에 주력해야 겠다.

내 마음이 살아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기 준비가 필요하다. 청소년들과 함께 있다보면 혹 청소년 문제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자칫 본래마음을 잃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 청소년을 대한다면 청소년들은 믿고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성품을 단련하여 그늘이 넓은 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모두에게 불성이 갊아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고등학생 정도면 육체로 봤을 때 거의 성인에 가까운 청소년들이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어른이 다 되었거니 하는 착각 속에 젖어 성년의 모습으로 대할 때가 있다.

법회를 보는데 어떻게든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한 학생이 있었다. 법회 분위기가 너무 산만한 것 같아 몇 번을 타이르다 못해 설교를 하던 중간에 버럭 화를 냈다. 내 스스로도 당혹스러웠고 그 일을 당한 학생도 기분이 상했는지 나가 버렸다. 그러나 다음 주에 그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법회에 참석하였다. 너무도 티없는 모습이 고마웠고, 시험기간이 되자 친구들과 동생들을 지도하며 학습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경계따라 있어지는 상황에 성급한 내 마음이 자칫 또 하나의 인연을 놓칠 뻔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며 더욱 불공하는 마음으로 청소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더불어 함께 하고자 노력해야 겠다.

청소년들이 하기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모든 일을 같이 하려고 하였다.

청소를 해야 할 때, 비디오를 보고자 할 때, 시험을 볼 때 청소년들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하였다. 그러다 보니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이제는 함께 하려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음을 지켜봐 주는 사람(교무)이 있다는 사실에 당당해져 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종사님 교법을 전하는 교역자로서 당당하게 얘기하였다. 미래세상과 우리 교법의 우수성에 대해...

이제는 야단을 쳐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준다. 그들의 미래는 여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세워진다. 우리에게는 교법의 건실함을 밝혀 주시는 종법사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 힘으로 교화를 하며, 또한 그 법을 실천하고 전하기에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인류의 미래는 더욱 맑고 밝고 훈훈할 것이다.

<영광교구 영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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