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등불 영산성지고등학교

▲ 탈북 청소년 김승일 군이 도자기 특성화 수업 중 물레를 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 군은 사회복지계에 종사하는 꿈을 갖고 있다.
▲ 특성화 수업 가운에 하나인 탈춤.
최근 일진회와 왕따문제 등으로 학원가가 얼룩진 가운데 이것이 더 이상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의 근원이 가정에 있다며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가 하면, 비교육적 비합리적 체벌문화가 청소년들의 의식을 멍들게 하고 있어 교육계가 먼저 혁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본사는 왕따와 학교폭력, 교사의 체벌이 없는 학교, 학생들이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참교육의 방향로를 찾아보았다.


오전 11시, 셀레스(확인요망) 선생님의 영어수업시간. 교실에 들어서자 밝은 학생들의 표정에서 자유분방함을 발견한다. 여느 학교 같으면 수업시간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 법도 한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휴대폰을 보며 문자를 보내거나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학생들도 있지만 수업은 활기차게 진행된다. 서투른 영어로 선생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 속에 생동감이 넘친다.

‘개성 강한 아이들’

교단의 근원성지인 영산성지에 자리한 영산성지고등학교(이하 성지고). 교단 최초의 대안학교인 이곳은 원기60년(1975) 영산선원(현 영산선학대학교 전신) 부설 3년제 중등부로 문을 열고 지역사회에 교육혜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원기69년 농촌지역 학생수가 감소하여 한때 폐교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부적응·중퇴학생을 위한 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비전을 제시하며 오늘날 국내 대다수 대안학교 태동의 모체가 되었다.

성지고는 특성화고등학교인 까닭에 입학에 거주지 제한이 없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든다. 이들 대다수는 학생들에게 지시적이고 군림하는 기존 학교에 적응을 못하거나 여러 삶을 경험하고 뒤늦게 입학한 ‘개성 강한 아이들’. 그런 까닭에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16세에서 심한 경우 26세까지 10여 년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과’중심 무학년·무학급 운영

이런 학생들을 위해 성지고는 ‘무학년·무학급제’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과목이라도 단계를 나누어 시간을 배치하고 학기초 진단고사를 토대로 학생 스스로 수준에 맞는 반을 선택하도록 한다. 1·2·3학년이 함께 수업을 받는 풍경은 이미 이곳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성지고는 일반학교의 ‘반’보다 오히려 훨씬 깊은 유대감으로 결속된 ‘과’가 있다. 1·2·3학년을 비슷한 비율로 배치해 꾸려진 세대모임인 ‘과’는 전인교육의 중심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생활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부모가 되고 친구가 되고 인생의 상담자가 된다.

충남 공주에서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는 한 학생은 어느 선생님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우리 과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답한다. 취미나 적성에 따라 스스로 과를 선택했던 까닭일까. 이 학생은 이어 “지식은 포기해도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곳이 이 곳”이라며 “학생들에게 맞춰서 수업을 하는 것은 일반학교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금새 학교자랑을 한다.

‘체벌’이 없는 학교

성지고에는 ‘체벌’이 없다. 교사들은 이미 15년 전에 스스로 체벌 포기를 선언했다. 학생들이 모두 모범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성 강한 아이들’이기에 교사들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이 없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을 부처로 보는 시각과 학생들의 인격에 대해 최대한 존중하고 믿어주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완전한 자율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 매사에 무기력한 학생들이 내면적으로 정신의 자주력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마음공부와 마음일기 기재다. 송원웅 교감(도무)은 “정규 수업 중 1시간을 마음공부로 진행하고 매일 저녁 기숙사 세대별 모임을 통해 마음일기를 지속적으로 기재하고 있다”며 “밖으로 더욱 주의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상·벌점을 운영, 불가피하게 벌을 주어야 할 때에는 교내·외 봉사활동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공부로 자주력 길러

체벌 없이 마음을 연 대화로 모든 일을 풀어 가는 영향일까, 성지고에는 학교 폭력도 없다. 지난 학년도에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교직원·학생·운영위원·학부모 등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3일에 걸친 ‘전체회의’ 끝에 가해 측이 사과를 하며 원만히 마무리되었다. 가해 학생은 자청하여 3주간 소록도 병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송 교감은 “공방과 변명, 대안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 모두 하나임을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건학 초기부터 이어지는 이 전체회의는 학생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되고 있었다.

다양한 특성화 수업

성지고 수업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특성화 수업. 매주 금요일 시행되는 특성화 수업은 도자기·짚풀공예·골프·서예·생활요가·목공예·풍선아트·음악감상·탈춤·판소리·줄넘기·공예·볼링·탁구·검도 등 다양한 과목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과목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원할 경우 새 과목이 개설되기도 한다. 또한 특성화 수업은 기존의 교육체계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학생들에게 생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성지고 교장 황명신 교무는 “성지고에는 심지어 다른 대안학교를 거치고 오는 학생도 있다”며 “그런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 역할”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참교육의 등불이 소태산 대종사 대각의 서기가 어렸던 노루목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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