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대재의 특별한 인연
유산 유허일 대봉도의 딸 유경렬 교도 오타원 임선양 원로교무의 동생 임선근 교도
대종사님 뵌 유년기부터 황혼기까지 다른 삶이지만 닮은꼴 유지한 70년 우정

 

6월을 맞아 철없던 시절 큰 어른 대종사님을 회상하며 중앙총부 성탑앞에서 늦깎이 다짐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

세타원 유경렬 교도(77·돈암교당, 사진 왼쪽)와 근타원 임선근 교도(77·익산교당, 사진 오른쪽). 두 사람은 6·1대재를 앞두고 마음의 고향이자 대종사 성탑이 있는 중앙총부를 찾아 옛 일을 회상했다.

닮은꼴이 많은 두 사람은 친구를 넘어 70년이 넘게 도반의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영산에서 대종사님과 역대 교단 선진들 주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6살때부터 함께 영산성지에서 김영신 교무로부터 철자집을 수학했고, 항상 함께 학교를 다니던 백수동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 사람(박은국 원로교무의 언니)이 중매를 하여 결혼했고, 공교롭게도 부군들이 모두 군인이었다는 점도 이들의 특이한 닮은 이력이다.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소꿉장난. 연하인 김대관·송순봉 원로교무(백수동초등학교 3회)와 함께 영산성지 주변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공부할 때도 뒷동산에 올라 꽃을 꺾어 머리에 꽂으며 ‘철없이’ 노는데 주력했단다.

또 두 사람 모두 전무출신은 아니지만 모두 전무출신 집안이기도 하다.

유 교도는 아버지가 유허일 대봉도이다. 유허일 대봉도는 51세 때인 원기17년에 일산 이재철 대봉도의 연원으로 입교한 이후 원기24년과 원기33년 두차례 교정원장에 취임했고, 총부 교감으로 있으면서 《불교정전》 간행에 공헌했으며, 전재동포구호소 사무장·대한민국 건국준비위원·종교연합회 이사 등 교단 내외에서 폭넓게 활동한 선진이다. 유 교도는 유허일 선진의 3남2녀중 넷째이다.

임 교도 역시 3녀중 막내로 언니가 임선양 원로교무이며, 미주동부교구 마이애미교당 백현린 교무의 어머니다.

유 교도에게 대종사님은 ‘가슴이 뛰도록 두려운 분’이다. 현 영산교당 주변이 집이었던 유 교도는 담 너머로 회색 망토를 입은 대종사님을 보면 집안에 숨어 지켜보곤 했던 범접하기 힘든 어른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단다. 두려움보다는 일종의 경외감이었으리라.

임 교도에겐 오히려 대종사님이 ‘겁없이 뵈었던’ 큰 어른이었단다. 전무출신하던 큰 언니 임선양 원로교무가 영산에서 수학할 때, 웃으시며 ‘철없는 어린 것’이라 주변에서 말할 때 그냥 웃기만 했단다. 눈썹바위봉 아래 살았던 임 교도는 종종 걸음으로 야회에 가서도 설법을 받아들을 만한 나이가 아니었기에 어른들이 데려가면 졸면서 그 분위기에 취해서 어릴 때를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대종사님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는 얼마나 큰 어른인지는 몰랐고, 이제 철이든 나이에 열심히 교당생활을 하며 ‘큰 어른’을 다시 만나고 있단다.

사는 공간은 서울과 익산으로 다르지만 교당에서 주인역할과 함께 끊임없는 정진을 하고 있다. 1년이면 한 두차례 만나 옛 일을 회고하고 유년기의 ‘성은’을 갚기 위해 정진을 다짐하곤 한다.

이젠 ‘몸 바꾸기 위한 준비기’ 동안 세속의 모든 잡철과 연을 털어버리고, 성탑앞에서 내생의 정진을 위해 하는 다짐이 너무나 거룩해 보인다. 한 때 성인을 만나고, 교단 창립기 주역들을 스쳤던 이들에게 현재의 원불교는 너무나 소중한 삶의 기반이다.

깔깔거리며 총부를 산책하는 이들은 어느새 영산을 해작이며 뛰어 놀던 동심의 그 소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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