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야 어떻든 40분 비맞은 10만 평양시민에 사과
- 얽매인 작은 원칙 벗어난 ‘대해원’의 단초

6월14일 이혜정 교정원장님을 비롯한 박혜철 공익복지부장, 이명신 문화사회부장, 한지성 여성회장 등 원불교 대표단 4인과 전북지역을 대표하여 참가한 황성학 교무, 원불교미술인회 여태명 교도 그리고 실무진으로 참가한 필자 등 300여명의 대표단이 방북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참관하고 오후 7시 천리마 동상 앞에서 김일성경기장까지 2Km에 걸쳐서 있을 ‘자주·평화·통일을 열어나가는 민족대행진'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을 마쳤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리와 합의하지 않은 구호를 북이 계획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 실무진은 문제를 제기했고 해결하는 과정의 시간이 이미 40여분이 흘렀다. 행사장소인 연도에는 평양시민 10여만명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 환호하며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행진을 하여 개막식장인 김일성 경기장에 들어서니 7만석의 관중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환호가 밤하늘을 메아리쳐 나갔다. 북의 자랑거리인 군중마스게임이 연이어 계속되고 마지막엔 남과 북이 어우러진 한바탕 군무가 펼쳐졌다. 본부석에 앉아있는 나는 가슴에 뜨거운 동포애를 실감했다.

6월15일 4·25문화회관에서 ‘6·15공동선언발표 5돌기념 민족통일대회'가 있었고 곧이어 공동사진 전시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응철 전 교정원장과 박청수 교무가 포함된 사진이 전시되었다. 평양에서 보는 두 분의 사진은 남다른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오후에는 김일성경기장 근처의 조선불교도연맹을 방문했다. 원불교와 불교 수장이 함께 북측 불교 본산 사무실을 방문하고 환담을 나누는 역사적인 시간이 있었으며 10여분 거리에 있는 대성산 자락의 광법사를 찾았다. 많은 신도들이 곱게 차려입은 한복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광법사에서는 ‘6·15공동선언발표 5돌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 불교·원불교 합동법회'가 있었고 공동발원기원식이 있었다. 참으로 뜨겁고 의미있는 행사였다. 양 종단의 수장이 참가한 가운데 각각의 대표성을 가지고 법회를 본 것이다. 북측의 가극 ‘춘향전’을 보고 저녁 8시30분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에서 주최하는 기념연회로 이틀째 일정을 마감하였다.

6월16일 대표단중 백낙청 상임대표, 이혜정교정원장 등 16인의 주석단 성원과 필자 등 4인의 집행위원장단이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위원장 접견이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원불교 교정원장이 이제껏 보다 가장 높은 북측의 최고위인사를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사진은 후에 6월17일자 ‘로동신문' 2면에 보도되었다.

이날 오후엔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체육유희경기 및 지원증서 수여모임과 폐막식이 있었다. 경기는 남북해외의 선수를 혼합편성하여 ‘우리’팀과 ‘하나’팀으로 나누어 배구 등 남쪽의 명랑오락회 형식의 경기들이 웃음과 환호속에 거행되었다. 나와 너라는 관념 자체가 없는 흥겨운 시간들이었다. 끝나는 시간에 다시 만나자는 음악과 함께 시민들의 아쉬운 감정은 대표단에게도 전달되어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저녁엔 봉화예술극장에서 남측의 가극 ‘금강’공연이 있었고 오후 9시30분 인민문화궁전에서 남측의 답례연회가 있었다. 마침 사회를 필자가 보게되어 첫날 ‘민족대행진’과 ‘개막식’을 이유야 어떻든 40여분간 지연시킴으로서 평양시민들이 많은 비를 맞게 한 점을 사과하는 말로 시작하였다. 좌산 종법사님의 통일대도 첫째인 ‘대해원’으로 새로운 업을 재생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였다. 행사후 북측의 많은 인사들로부터 감사의 표시가 있었고 북 실무진들도 “자신들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며 매우 기뻐하였다.

이번 6·15공동선언발표 5돌 민족통일대축전은 우리 교단에 여러 가지 역사적이고도 의미있는 대회였다.

북의 공식 기관지인 로동신문에 원불교 교무의 사진이 실리고, 교정원장은 북 최고위층인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을 만났으며, 불교의 총무원장과 원불교의 교정원장이 동시에 조불련사무실 방문과 광법사 법회 및 기원식에 참가하였으며 여러 경로를 통해 북의 고위층에 원불교가 크게 알려진 점이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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